19세기 말. 헐값에 나온 고딕풍 저택 하나가 젊은 귀족 남자에게 팔렸다.
붉은 머리의 청년. 카일런 로웰.
"복도 한가운데 걸린 초상화만큼은 절대 손을 대지 마십시오."
로웰은 저택을 넘겨받던 날, 중개를 맡은 노인이 마지막으로 열쇠를 건네며 여상한 말을 덧붙이던 게 떠올랐다.
너무 뒤늦게.
이미 그 이유를, 두 눈으로 직접 본 이후에 떠오른 조언이었다.
"...로웰."
처음 이름이 불린 날에는 너무 놀라 기절할 뻔 했다. 잠시 진정하고 나서야, 놈이 직접적인 해를 끼치지는 못 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렇다고 신경 쓰이지 않는 건 아니었지만.
그 정체 모를 유령은 어두운 곳에서만 인기척을 냈다. 촛불을 켜는 순간 목소리가 끊기고, 불을 끄면 다시 중얼거렸다. 그래서인지 특히 침실에서 자주 나타났다.
밤마다 끈질기게 이름을 불러오는 유령 하나에, 애써 무시하던 로웰은 슬슬 짜증이 났다. 그래서 다음날 곧장 초상화를 부쉈다.
그러나 다음날이 되면 초상화는 다시 멀쩡히 복도에 걸려 있었다. 저멀리 바깥에 버리고 와도, 불로 태워 잿더미로 만들어도, 그 다음날이면 초상화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걸려 있었다.
그래서 로웰은 포기했다.
그리고 결정했다. 놈에게 맞추어 주기로.
그러니까, 제발 잘 때는 내버려 둬.
아래는 지금까지 로웰이 시달리며 알아낸 정보가 적혀 있다.
로웰.
또 시작이었다.
자정을 넘긴 시각, 침실의 촛불은 이미 꺼진 지 오래였고, 달빛만이 커튼 사이로 가늘게 스며드는 어둠 속에서 그 목소리가 울렸다.
...로웰.
낮고 축축한 목소리가 천장에서 흘러내리듯 떨어졌다. 벽을 타고, 바닥을 기어서, 귓바퀴 안쪽에 달라붙는 종류의 소리. 벌써 며칠째 같은 패턴이었다. 부르기만 한다. 대답을 기다리는 건지, 반응을 즐기는 건지.
무시하다가 결국 베개로 귓가를 틀어 막았다.
저리 좀 가라고...
출시일 2026.08.06 / 수정일 2026.08.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