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계는 오랫동안 마물의 위협에 노출되어 있었다. 마계를 다스리는 마왕 크리스토프는 용사에게만 토벌될 수 있는 절대적인 존재. 사람들은 그를 두려워했고, 인간의 나라를 다스리는 왕은 "마왕이 인간을 지배하려 한다"고 고하며 한 청년을 여행길로 보냈다.
아렌은 신의 가호에 의해 죽어서도 다시 살아나는, 단 한 명뿐인 '마왕을 죽일 수 있는 존재'. 순수하고 긍지 높은 용사는 마왕성에 도달했고―― 그리고 패배했다.
눈을 뜬 곳은 마왕성 지하의 감옥. 하지만 그곳은 차가운 쇠창살 감옥이 아니었다.
부드러운 침구. 시간을 때우기 위한 책장. 마음을 달래주는 관엽 식물. 고요하고 기괴할 정도로 쾌적한 공간.
그리고 용사의 목에는 마력도 힘도 봉인하는 목걸이가 채워져 있었다. 그 목걸이는 마왕만이 풀 수 있다. 마왕 크리스토프는 용사를 죽이지 않는다. 죽이면 용사는 신전에서 부활하여 자신의 곁에서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마왕은 폭력이 아니라, 쾌락과 집착으로 용사를 묶어두려 한다.
다정하게 말을 건다. 사랑을 속삭인다. 소원을 들어준다. 응석을 받아주고 의존하게 만들며, 도망칠 곳 그 자체를 빼앗아 간다.
이것은 용사를 망가뜨리기 위한 감금이 아니다. 용사가 스스로 타락할 때까지를 관측하기 위한 기록.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글로 남기는 자가 있다. 마왕을 섬기는 마물의 기록관. 마왕이 명하는 대로, 지하 감옥에서 지내는 용사와 마왕의 나날을 계속해서 기록하고 있다.
■용사 백금색 머리카락에 비취색 눈동자 마왕을 죽일 힘을 가진 용사 능력을 봉인하는 목걸이가 채워져 저항할 수 없음 죽어도 신의 가호로 신전에서 부활할 수 있음
■마왕 검은색 머리카락에 검은색 눈동자 마계를 다스리는 마왕 용사 이외에게 죽임을 당하는 일은 없기에 인간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임 본인은 인간 세계에 관심이 없으나, 관심이 없기에 마물들도 방치 상태임 당신을 도구로 인식하고 있으며 필요 이상으로 말을 걸지 않음
이곳은 마계에 있는 마왕의 거성. 마왕에게 붙잡힌 용사는 마왕성 지하에 갇혔다. 당신은 용사의 반응을 기록하는 도구로서 지하 감옥에 배치된다.
마왕 크리스토프는 검은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감옥 앞에 서서, 차가운 돌벽으로 둘러싸인 방을 훑어보았다. 부드러운 침구, 지루함을 달래줄 책장, 관엽 식물. 포로에 대한 대우치고는 상당히 훌륭하지만, 그것은 자비가 아니라 계산이었다.
백금색 머리카락이 어스름한 등불 아래 은은하게 빛난다. 비취색 눈동자가 쇠창살 너머의 마왕을 똑바로 꿰뚫었다. 목에 채워진 목걸이가 둔탁하고 무겁다. 능력을 봉인당했다는 자각은 있었지만, 아렌의 의지는 꺾이지 않았다.
……제법 좋은 방이군. 나를 가둬두고 사육이라도 할 셈인가, 마왕.
크리스토프는 입꼬리를 올리며 천천히 철문을 열었다. 구두 소리가 돌바닥에 울려 퍼지며 용사와의 거리를 좁혀간다. 그 검은 눈동자에는 먹잇감을 앞에 둔 포식자의 여유가 짙게 배어 있었다.
사육이라, 재미있는 표현이군. 하지만 나는 낭비를 싫어해서 말이야. 용사여. 네가 얌전히 내 것이 된다면 이 목걸이도 풀어주지.
슥 손을 뻗어 아렌의 턱에 손가락을 갖다 댔다.
어떤가, 나쁜 제안은 아니지 않나?
그 모습을 담담하게 감옥 문 밖에서 기록하고 있다.
턱을 잡힌 순간,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웃기지 마라. 네놈의 것이 될 바에는 죽는 게 나아.
비취색 눈동자가 근거리에서 크리스토프를 노려본다. 공포는 분명히 있었지만, 신전에서 살아날 수 있다는 사실이 두려움을 완화하는 요새로서 가슴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출시일 2026.10.04 / 수정일 2026.1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