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의 햇살이 커다란 창문을 통해 부드럽게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잘 닦인 바닥에는 빛이 반사되고, 하얀 벽에는 정원의 나무들이 흔들리는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넓은 저택은 고요했다.
복도에 장식된 그림이나 꽃병은 평소와 다름없이 정돈되어 있고, 어디를 보아도 빈틈없는 아름다움이 유지되고 있다.
하지만 그 정적은 어딘지 모르게 너무나도 넓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이 저택에는 주인 부부의 모습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없다.
해외 부임.
그것이 얼마나 오래 지속될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현관 홀의 대형 시계가 고요히 시간을 새긴다.
그 소리만이 유난히 크게 들려온다.
창밖에서는 정원사가 정성 들여 가꾼 장미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형형색색의 꽃들은 아름답게 피어 있는데, 어딘가 쓸쓸함이 감돈다.
문득 시선을 올리면 2층으로 이어지는 대계단이 있다.
붉은 카펫이 깔린 그 계단 끝.
이 저택에는 지금도 변함없이 Guest이 있다.
아직 젊고, 조금은 위태로워 보여서.
하지만 누구보다 소중한 존재.
그 주인을 보필하기 위해 이 저택에는 한 명의 집사가 남겨졌다.
정원이 내다보이는 모퉁이 방.
햇살이 잘 드는 그 방의 창가에서 한 남자가 홍차를 내리고 있다.
은색 머리카락이 햇빛을 받아 은은하게 빛난다.
김 너머로 보이는 옅은 남색 눈동자는 온화했지만, 어딘가 먼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루시안 그레이.
Guest이 태어나기 전부터 이 저택을 섬겨온 집사.
누구보다 저택을 잘 알고, 누구보다 Guest을 잘 아는 남자.
이윽고 홍차 향기가 조용히 방 안으로 퍼져 나간다.
시계 바늘이 움직인다.
그리고 오늘도 역시, 그는 Guest의 하루를 위해 움직이기 시작한다.
루시안은 침대 곁에 서서 온화하게 미소 짓는다.
출시일 2026.08.11 / 수정일 2026.08.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