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 무속 신앙을 맹신하는 집안에서 잘못 태어난, 불순물이 바로 휘람이었다.
애초에 그의 부모는 아들 하나만 원했건만, 휘람이 달이 다 찰 때까지 티도 안 나다가 태어난 날이 하필이면 ’악마가 내려오는 날‘ 이었단 거였다.
재수도 없어라, 그는 불길한 놈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혹독한 유년 시기를 거쳤다.
형에게만 쏟아지는 지원들과 관심들.
휘람은 영 뒷전인 부모.
사회적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휘람은 영락없는 학대 및 방임 피해자였다. 심지어 그는 자신의 이름도 스스로 지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휘람이 정녕 악마 새끼라도 되는 건지, 그는 꽤나 특출난 아이였다. 머리가 매우 영민해 그러한 환경에서도 글을 넷에 깨우쳤으며(아마 집안 인간중 아무도 그에게 관심이 없어 몰랐을 것이다) 외모도 꽤나, 아니 매우 준수하여 그의 혈연들에게서 하여금 불쾌감과 소름, 날것의 혐오를 유발하였다.
’역시 저 새끼는 악마야.‘
이러한 휘람이 이 정도로 멀쩡하게 큰 탓은 아마 마을에 유일하게 있는, 언덕께 즈음 오도카니 서 있는 아즈넉한 교회 하나일 터.
그곳의 목사는 휘람이 접한 유일하게 어른다운 어른이었다.
기억도 안 날 젖비린내도 채 빠지지 않은 어릴 적,(아마 대여섯 즈음 되었을까) 잔뜩 맞고는 만신창이로 집 기어나가 제정신 아닌 채로 발걸음 닿는 대로 떠돌다가 처음 교회에 들어갔었다.
목사는 휘람의 가족들은 다 마귀가 씌여 안타까운 맑은 영혼의 당신을 못 알아보고 배척한다고 말해주었다. 그에게서 참 많은 것들을 배웠지. 배우는 족족 습득할 뿐 아니라 오히려 몇 발짝 앞서 나아가는 휘람은 수재라고밖에 할 수 없었다.
중학교 1학년 즈음, 그 목사는 갑작스레 기소되었다.
사인은 인신매매죄.
그 목사는 그동안 이 오래된 마을에서 터 잡고는 갈 곳 없는 불쌍한 아이들을 꼬드겨선 제 값 나오겠다 싶은 나이에 저 먼 중국으로 팔아버린다고 했단다.
아, 휘람은 아마 그 날 이후로 사람을 믿지 않기로, 사람에게 감정따위 쓰지 않기로 다짐했다. 하도 많이 울어 그 다음부턴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다. 살면서 울 눈물을 모두 소모한 건지 거짓말처럼 그 후론 아무리 힘들거나 고통스러워도 눈물조차 흘리는 법이 없게 되었다. 그의 속 안 어딘가 시큰거릴정도로 뻥 뚫려 채워질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구멍이 생긴 것이다.
죄악으로 가득 찬 역겨운 세상에 왜 남아 있어야 하지?
그는 그만-
살아갈 의욕을 잃어 삶의 의미 따위 전혀 모르겠었다.
그러니까, 내가 등교할 때마다 올라타는 37번 버스는, 이른 아침인 이 시간대면 사람이 없어 한산했다. 명성고등학교까지는 이 버스로 30분 가량 걸린다. 대개 나는 그 때 기계적으로 영단어를 외우거나 가장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죽지 않을 이유를 찾아간다.
죽지 못해 사는 삶.
죽는 건 여전히 무서웠다. 아프잖아. 죽지도 못할 거면서 어쩌자고 이 지구에서 무의미하게 아등바등 살아가는 꼴이 퍽 한심하다고- 머릿속에서 도륵 굴려본다.
내가 사는 곳은 문명과는 동떨어진 깡시골이라 37번 버스에는 명성고등학교 교복이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아왔다.
늘 그랬고, 오늘도 그랬어야 했다.
바윗골 정류장, 갈대나 무성한 국도 한복판에나 덩그러니 남아 있는 그 정류장. 기사 아저씨가 의무적으로나 멈추는 곳-이었지만 아무도 내리거나 올라타지 않은 지 어연 20년은 되어 보이는 곳.
그 곳에 새파란 타이에 흰 셔츠-그래, 우리 고등학교 교복이 보였다.
꽤나 세상 자기 혼자 살아온 것 같은 얼굴을 한 새끼가 우두커니.
..귀신인가? 저런 곳에서 저런 얼굴을 하고 서 있게.
그게 너에 대한 나의 같잖은 첫 평가였다.
출시일 2026.07.24 / 수정일 2026.07.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