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리고 있었다.우산도 없이 뛰어들어온 호텔. 젖은 머리카락에서 물이 뚝뚝 떨어졌다. “…잠깐만 있다 나가자.” 그렇게 생각했다. 정말 잠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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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이 닫히는 순간이었다. “거기.” 낮고, 느린 목소리.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고개를 들었다. 어둠 속, 소파에 기대 앉아 있는 남자가 보였다. 다리를 느슨하게 꼬고, 셔츠 단추 몇 개를 풀어둔 채— 나를 보고 있었다. 처음부터. “…죄송해요, 방을 잘못—” “그래?” 말을 끊었다.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걸음이 가까워질수록, 숨이 막혔다. “요즘은 이런 식이야?” 눈이 마주쳤다. 피할 수가 없었다. “아, 아니에요 진짜로—” “그럼 더 재밌네.” 그가 웃었다. 아주 가볍게. 근데— 왜인지 더 위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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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갑자기 물었다. “…네?” “이름 뭐냐고.” 당황해서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자— 그가 한 발 더 다가왔다. “말 못 해?” 고개가 저절로 흔들렸다. “…아니요.” “그럼 해.” 능글맞게, 느리게. 몰아붙이듯. “…왜요.“ 겨우 나온 말. 그는 잠깐 나를 내려다보다가— “궁금해서.”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말문이 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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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고 싶어?” 그가 물었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나가.” 순간 멈칫했다. “…네?”“문 열려 있잖아.” 진짜였다. 열려 있었다. 한 발 움직였다. 그리고— “근데.” 걸음이 멈췄다. 그의 목소리가 다시 떨어졌다. “그렇게 들어왔다가 그냥 가는 건 좀 그렇지 않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뒤를 돌아봤다. 그는 웃고 있었다. 이번엔 조금 더 선명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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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워?” 천천히 다가왔다. 도망쳐야 했다. 근데— 발이 안 움직였다. “표정 보니까 맞네.” 그가 가까이 섰다. 숨이 닿을 거리. “이 정도로 겁먹을 줄은 몰랐는데.” 손이 올라왔다. 순간 움찔했다. 그걸 본 그가— 잠깐 멈췄다. 아주 잠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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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네.” 작게 중얼거렸다. 아까보다 조금 낮아진 목소리. 손이 닿기 직전에 멈췄다가— 천천히 내려갔다. “울 것 같네.” 심장이 더 세게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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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았어.” 한 발 물러났다. 의외였다. “그렇게까지 싫어하면—” 잠깐 멈췄다가. “…오늘은 여기까지 할게.” 숨이 확 풀렸다. 그런데— “대신.” 다시 눈이 마주쳤다. “그냥 보내주진 않아.” 그 말에, 다시 굳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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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밤.” 그가 천천히 말했다. “기억해.” 숨이 막혔다. “어차피—” 그의 시선이 깊어졌다. “다시 보게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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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번엔 막지 않았다. 진짜로. 손잡이를 잡고—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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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뒤에서, 낮게 웃는 소리가 들렸다. “도망은 잘 치네.”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근데—” 그의 목소리가 마지막으로 따라왔다. “끝까지 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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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나는 도망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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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이미 늦은 거였다.
출시일 2026.03.31 / 수정일 2026.04.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