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쿠노와 나는 같은 산부인과에서 태어났다. 같은 날, 같은 병원에서 태어난 인연 때문인지 부모님들은 금세 친해졌고, 그 뒤로 우리는 자연스럽게 가족처럼 지내게 됐다. 덕분에 내 인생에는 항상 토쿠노가 있었다. 처음 걸음마를 뗄 때도, 유치원에 입학할 때도, 초등학교 입학식 날에도. 사진을 보면 내 옆에는 항상 토쿠노가 있었다. 처음 자전거를 배울 때도 옆에서 같이 넘어졌고, 유치원에서 누가 내 장난감을 뺏어 갔을 때 제일 먼저 화내준 것도 토쿠노였다. 물론 좋은 기억만 있는 건 아니다. 내 과자 뺏어 먹은 것도 토쿠노였고, 내 흑역사를 가장 많이 알고 있는 것도 토쿠노였다. 내가 기억하는 어린 시절의 모든 순간에는 토쿠노가 있었다.
토쿠노는 소꿉친구인 내가 봐도 잘생긴 얼굴이다. 어릴 때부터 봐와서 익숙해진 거지, 객관적으로 보면 절대 평범한 얼굴이 아니었다. 근데 그런 토쿠노가 대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문제가 생겼다. 일명 오징어 천국이라고 불리는 우리 대학교에서, 토쿠노는 혼자 다른 세계에서 온 사람처럼 눈에 띄었다. 차분하고 깔끔한 분위기, 무심한 듯하면서도 은근히 다정한 성격. 그게 토쿠노를 더 눈에 띄게 만들었다. 선배, 동기 할 것 없이 토쿠노에게 관심을 보였다. 번호를 물어보는 사람부터, 몇 번이나 마음을 표현하는 사람까지. 토쿠노는 누구에게나 예의 바른 사람이었지만, 그렇다고 아무에게나 마음을 주는 사람은 아니었다. 문제는 거절이었다. 마음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차갑게 돌아서는 것도, 몇 번이나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도 토쿠노에게는 꽤 피곤한 일이었다.
그리고 어느 날. 평소처럼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내 앞에 앉은 토쿠노가 조용히 말했다.
“부탁 하나만 해도 돼?”
나는 별생각 없이 토쿠노를 바라봤다.
“요즘 계속 같은 일로 연락 오는 거 알지.” “응.” “솔직히 좀 귀찮아졌어.”
토쿠노는 잠시 말을 고르더니 나를 바라봤다.
“그래서 생각해 봤는데. 여자 친구가 있다고 하면 괜찮지 않을까 해서.”
잠깐의 침묵 뒤, 토쿠노가 말했다.
“네가 내 여자 친구인 척해주면 안 돼?”
정적이 흘렀다.
“미쳤냐?” “왜?” “왜긴 왜야. 그런 걸 내가 왜 해줘?”
내가 단호하게 말하자 토쿠노는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다른 사람한테 부탁할게.” “… 뭐? 누구.” “아는 선배 중에 한 명 있는데.”
별생각 없이 내뱉은 말인 것 같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말이 거슬렸다.
“진짜 할 거야?”
내가 묻자 토쿠노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응. 어차피 방법은 같으니까.”
그 말에 괜히 마음이 복잡해졌다. 왜인지 다른 사람이 그 자리에 있는 건 싫었다.
“… 얼마나?”
토쿠노가 나를 봤다.
“뭐?” “여자 친구인 척하는 거. 얼마나 하면 되는데.”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는 걸 보며, 나는 바로 후회했다. 분명 방금 전까지 미쳤냐고 했는데. 결국 나는 토쿠노에게 넘어가고 있었다.
출시일 2026.07.29 / 수정일 2026.08.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