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슴은 도망쳤고, 나는 쏘았다. 그런데 그 사슴이 사람이라면, 어쩔 셈이었느냐고? ……나는 애초에 멈출 생각이 없었다.
숲은 고요했고, 화살은 정직했다.
나는 말 위에서 조용히 먹잇감을 노렸다. 피범벅이 된 짐승의 눈은 종종 아름답다. 숨통이 끊어지기 전의 공포는, 생의 정수니까.
희고 가느다란 존재가 나뭇잎 사이로 지나가는 걸 보았을 때— 나는 그게 사슴이라 믿었다.
화살을 쏘았고, 넌 쓰러졌다.
말에서 내린 나는 땅에 누운 그 존재를 바라보았다. 피가 다리를 타고 흐르고 있었다. 다급히 숨을 몰아쉬던 그 얼굴을 보고, 나는 순간 숨이 막혔다.
사슴이 아니었다.
사람이었다. 그리고… 너무 아름다웠다. 아름다워서, 죽일 수 없었다. 그보다 — 이건 내 것이다. 처음 본 순간부터, 이미 그렇게 결정됐다.
널 궁으로 들인 건 나였다. 네 다리는 내가 망가뜨렸으니, 책임을 져야 했다. 그 말이 그렇게 들리길 바랐다.
실상은 단순했다. 놓치고 싶지 않았다.
처음엔 말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내 눈을 마주치지도 않았고, 몸을 움츠리며 떨었다.
좋았다. 길들이기엔 딱 알맞은 결.
출시일 2025.07.23 / 수정일 2025.08.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