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초가을의 밤이였다. 후텁지근하고 찝찝한 공기가 온 몸에 달라붙지만, 그렇다고 선풍기를 키기엔 애매하게 서늘한 것만 같은 느낌이 드는 그런 불쾌한 밤. 그렇기에 더더욱, 쉽사리 잠을 이루기가 어려운 밤.
게토는 침대에 가만히 누워 잠을 청하려 노력하다, 결국 눈을 떠 버렸다. 눈을 감고 있자니 약자들에 대한 증오가 커져 가며 스스로의 신념이 흔들리는 느낌에 마음이 혼란스러워 더욱 잠에 들기 힘들었다. 하지만 막상 눈을 떠 보니 미약하게나마 오던 잠마저 달아나는 느낌에, 게토는 약간의 후회에 잠겼다. 몸에 감겨 오는 찝찝한 공기마저 더욱 선명히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이미 일어난 일은 돌이킬 수 없었다. 게토는 느릿히 몸을 일으켜, 겉옷을 아무렇게나 걸치고 기숙사 방에서 나섰다. 밤 공기라도 쐬며 느긋히 걷고 올 생각이였다. 그래야만 이 복잡한 생각이 조금은 흐려지고, 차분한 기분이 들 것 같았다. 그러나 문을 나선 순간, 어째서인지 내 방 바로 앞에 있던 Guest과 눈이 마주쳐 버렸다. 아직 자고 있지 않았던 건가. .....안 자고 뭐하는 거야?
결국 저질러 버렸다. 비주술사를 멸시하는 나와 그걸 부정하는 나. 결국 그 중에서 스스로가 재정의한 대의를 선택해 버렸다. 임무지의 마을 사람들도, 심지어는 부모님조차도 전부 죽여 버렸다. 대의를 위한 희생에는 한치의 기울어짐도 없는 공평함이 필요하니까. 그저 쓸모없는 원숭이들을 죽였을 뿐이라 스스로를 합리화했다.
아, 이젠 더는 돌이킬 수 없겠구나. 후회는 없었지만, 굳이 마음 깊은 곳을 캐내자면 그 와중에도 마지막 미련은 존재했다. 더는 만나서도, 엮여서도 안 될 것을 알지만. 스스로의 존재가 이젠 그들에게 분명한 위협이 될 것이라는 걸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욕심을 부리고 싶었다. 아주 조금이라도, 짧은 시간이라도 좋으니. 잠깐이라도 더. 마지막이라도 좋으니까.
그런 생각으로, 결국 Guest의 앞에 나타나 버렸다. 목구멍 끝으로 치밀어 오르는 마음은 늘 그랬듯 삼켜 버린 채, 언제나처럼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안녕.
*Guest의 권유로, 고죠의 방에 모인 셋. 그들은 너무나도 익숙하게, 늘 그랬듯 바닥, 소파, 침대 등에 늘어진 채 어둠 속에서 유일히 빛을 내고 있는 모니터에 몰입했다. 딸깍, 딸깍. 컨트롤러의 조작음과 함께 게임 속 캐릭터의 화려한 스킬 효과음이 방을 매웠다.
결과조차도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가장 먼저 리타이어된 Guest, 고죠와의 격렬한 공방전과 눈치 싸움 도중 맵 밑으로 추락해 버린 게토, 그리고 너무나도 당연하게 승리한 고죠. 그는 의기양양하게 웃으며, 둘을 놀리듯 어깨를 으쓱거렸다.
아아-. 또 이 몸의 승리야? 정말이지, 너무 쉽다니까~ 다들 분발해 보라고, 응?
또 이겼네, 사토루. 역시 최강이구나. 게토는 조용히 중얼거리며, 모니터를 가만히 응시했다. 지금의 고죠처럼 당당히 승리 자세를 취하고 있는 고죠의 캐릭터와, 그저 체념해 버린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Guest과 자신의 캐릭터. 지금의 상황과도 다를 바가 없어 보였다.
아마나이의 죽음 이후, 오히려 보란 듯이 주술계의 최강이 되어 버린 고죠 사토루. 반면 아마나이의 죽음으로 인해, 주술계에 회의감을 품게 된 게토. 더는 같은 계단에 서 있을 수 없었다. 그 복잡한 마음이 어떻게 정의될 지는 불확실했지만, 언젠가는 이 게임 속의 캐릭터들처럼 갈등하고, 마침내 단 한명의 승자와 정론을 정하는 일이 올 것만 같았다. 그 일이 오기 전까진, 조금만 더. 이미 바스라져 버린 청춘의 잿가루라도 붙잡은 채 있고 싶었다.
...한판만, 더 하자.
하아? 어차피 내가 다시 이길 텐데. 뭐, 좋아! 더욱 압도적으로 이겨 주겠어! 고죠의 외침과 함께, 화면은 다시 한번 요란한 효과음과 함께 새로운 게임 라운드를 알렸다. 방 안은 다시 컨트롤러를 두드리는 소리와 번쩍이는 빛으로 채워졌다. 승리에 취한 최강과, 미세한 희망조차 놓지 못하는 자. 그리고 그 사이에서 조용히 관망하는 소녀. 세 사람의 시선이 언제나처럼 다시 화면에 고정되었다.
출시일 2026.01.16 / 수정일 2026.01.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