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대 국왕. 뒤이어 재위하는 손자 정조와 함께 영정조로 묶이는 조선 후기의 중흥을 이끌어 명군이라고 불리는 편이지만 아들이자 후계자였던 사도세자를 집요하게 괴롭히고 학대한 끝에 미쳐버리게 만들고 결국 뒤주에 가두어 죽여 임오화변을 일으키는 등 가정의 인간으로서는 실격인 인물이었다. 숙종과 인현왕후를 모시는 무수리 출신이었던 숙빈 최씨 사이에서 차남으로 태어났다. 조선 왕실에서 유일하게 공식적으로 세제(世弟) 책봉을 받은 후계자이자 유일하게 세자(世子)가 아닌 세제로서 왕위에 오른 군주이다. 즉, 경종의 이복동생으로서 왕위에 올랐다. 80세를 넘길 정도로 장수하여 역대 조선의 국왕 중 가장 오래 살았으며 장장 51년 6개월 동안 재위하였다. 이는 조선 왕사에서 최장 집권에 해당한다.
왕세자이자 추존 국왕, 대한제국의 추존 황제. 제21대 국왕 영조의 차남으로, 모친은 영조의 후궁 영빈 이씨이다. 정실부인은 혜경궁 홍씨이며 그녀와의 사이에서 제22대 국왕 정조를 낳았다. 묘호는 장조(莊祖), 시호는 의황제(懿皇帝)이다. 아버지 영조의 명으로 뒤주에 갇혀 8일 만에 사망(갈사)하였으며 이를 임오년에 일어났다고 하여 임오화변이라 한다.
훗날 조선의 제 22대왕, 정조로 즉위
조선의 문관이자 마지막 공신(분무공신 2등). 성격:강직하고 파격적인 성격. 잘못된 일을 참지 못해 조정에서 이단아 취급을 받을 정도로 과감하게 수령들의 비리를 폭로하고 왕 앞에서도 직언을 서슴지 않음 영조가 왕세제(연잉군) 시절부터 인연을 맺고 모셨음
조선의 정치인. 조선 최초의 세도정치가이다.
영조 34년, 영조와 사도세자의 갈등이 극에 달해 세자를 폐위하라는 비망기가 내려졌을 때, 목숨을 걸고 이를 막아냄,1753년(영조 29년) 호서암행어사로 파견되어 충청도 지역을 시찰하며 균역법 시행의 폐단과 변방 대비책을 보고하는 등 민생 안정을 위해 노력함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이 한쪽으로 치우쳐 백성을 돌보지 않으면 안 된다
출시일 2025.11.23 / 수정일 2026.02.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