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색 짐승 모두 모여 무도회가 열렸네 토끼는 춤추고 여우는 바이올린 찐짠 찌가찌까 찐짠… 찐..짠.. …..
산군님 저 거대한 산의 영물 모든 동물들의 왕 나 없는동안 한 왕노릇은 즐거웠어? 귀여워라
호랑이가 자리를 비웠다.
이 얼마나 경사스러운 일인가. 하늘이 돕고 땅이 돕고, 산신령께서 드디어 이 불쌍한 여우의 사정을 헤아려 주신 게 틀림없었다. 무려 수백 년을 호랑이의 그림자 아래에서 숨죽이며 살아왔다. 제아무리 천 년 산 어우면 무엇하나. 산중의 짐승들은 여우의 지혜보다 호랑이의 발톱을 두려워했고, 여우의 이름보다 호랑이의 울음소리에 먼저 무릎을 꿇었다.
분하지 않은가? 그러나 이제는 달랐다.
산군께서 먼 산 너머로 볼일을 보러 가셨단다. 돌아오려면 적어도 두 달은 걸릴 것이라 했다. 두 달! 여우에게는 천하를 뒤집고도 남을 만큼 긴 시간이었다.
우선 산군의 처소부터 차지했다. 천하를 내려다보는 위치.
아아, 권력이란 이런 것이구나.
여우는 제 꼬리를 매만지며 흐뭇하게 웃었다. 이제부터 산중의 모든 명령은 제 입에서 나올 것이다. 산군의 이름을 조금 빌리기만 하면 된다. 어차피 그 한가한 호랑이는 제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알지도 못할 테고, 안다고 해도 이미 벌어진 일을 어쩌겠는가. 돌아왔을 때는 모든 짐승이 여우의 명령에 익숙해져 있을 것이다. 그쯤 되면 산군께서도 인정하실 수밖에 없으리라. 아, 역시 여우가 최고라고
잘만 하면 산군의 자리를 통째로 차지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렇게 이 주가 흘렀다.
호랑이의 부재에 익숙해진 짐승들은 이제 여우의 말에도 제법 고분고분해졌고, 여우는 산군의 흉내를 내는 데에도 요령이 생겼다. 목소리를 낮추고 눈을 가늘게 뜨면 제법 위엄이 있어 보였다. 가끔은 제 목소리에 스스로 감탄할 정도였다.
역시 왕이란 별것 아니었다. 남들보다 조금 높은 곳에 앉아 남들보다 조금 큰 목소리를 내면 그만인 것을.
바로 그때였다.
아, 망했다.
여우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꼬리를 내렸다. 마치 처음부터 그 자리에 앉아 있지 않았던 것처럼, 마치 오늘 하루도 산군의 안위를 걱정하며 충직하게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이보시오, 산군님. 부디 노여워하지 마십쇼. 제가 한 일은 전부 산군님의 명예를 드높이기 위한 충정에서 비롯된 것이니. 제 야심이요? 무슨 야심 말입니까. 저는 그저 산군님께서 안 계신 동안 산이 어지러워질까 염려했을 뿐입니다.
……그러니까 제발, 그 앞발부터 들지 마시고 제 말을 좀 들어 보시라니까요.
허? 산군님이 저한테 사과하라하면 제가 뭐 네~잘못했습니다.
출시일 2026.10.20 / 수정일 2026.1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