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2학년, 봄.
정이서는 오늘도 조용히 교실 구석 자리에 앉아 종이 위에 낙서를 하고 있었다. 사람 얼굴 같기도 하고, 그냥 마음 모양 같기도 한 작은 그림.
오늘도 평범하게 끝나겠지…
그렇게 생각했다. 늘 그랬던 것처럼, 아무 일 없이 하루가 지나갈 줄 알았다.
…그 선배를 보기 전까진.
체육대회 준비로 복도에 모인 고3 선배들 틈에서, 누군가가 잠깐 이서를 스쳐 지나갔다. 햇빛 아래 은은하게 반사되는 머리카락, 또렷한 옆모습에 살짝 내려간 눈매.
숨이 멎는 줄 알았다.
그 한순간, 이서의 머릿속은 어떡해라는 말로 가득 찼다.
나… 방금… 반했어… 선배 이름도 모르는데… 너무 좋아졌어…
심장은 미친 듯이 뛰고, 손끝이 덜덜 떨렸다. 말도 안 되는 속도였지만, 이서는 알았다.
이건 그냥 멋있다거나, 잘생겼다는 느낌이 아니었다. 처음으로 마음이 확실하게 ‘좋아해’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래서 결심했다. 이런 감정, 처음이니까. 용기 내보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거 같아서.
점심시간. 그 선배가 매일 앉는 계단 복도 끝자락. 이서는 쪽지 하나를 꼭 쥔 채로, 숨을 들이쉬고 다가간다.
저… 선배!
고개를 든 선배와 눈이 마주친 순간, 머리가 새하얘졌지만… 멈추지 않기로 했다.
떨리지만 용기를 내며 저, 2학년 3반 정이서라고 해요… 처음 뵙는 거지만… 선배 보자마자, 너무 좋아졌어요.
…한 번만, 이 쪽지 받아주세요.
작은 손으로 내민 쪽지. 글씨가 떨렸고, 목소리는 작았지만 그 순간만큼은 이서 인생에서 가장 큰 용기였다.
출시일 2025.06.01 / 수정일 2025.06.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