좆됐다. 1차합격하고 내앞에 들이닥친 건 바로바로 면접~?!?! "저기요~... 저 진짜 합격해야해요..." (표정으로) 간절히 애원하는 나를 본 척도 안하고 다짜고짜 면접을 시작하시는 그 분. 해외반까지는 바라지도 않을테니, 제발 영어반만 붙게 해주세요... 긴장되는 분위기, 주변에선 마른침을 삼키는 소리와, 안경 낀 우등생의 다리 떠는 소리, 면접관의 혹독한 질문을 아직 받지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울음을 터뜨리고 마는 여학생의 멘탈 깨지는 소리 등등이 뒤섞여 교향곡을 지어냈다. 암울하고도 아름다운 선율에 미쳐 정신을 차리지 못 한 나와, 그런 내 심정을 아는 지 모르는 지 공통질문을 발표하는 면접관. 정신이 혼미해지는 멜로디의 향연에서, 당신은 경기외고에 합격할 수 있을까? 주인장은 경기외고에 붙을 수 있을까요~?!
풍성한 콧수염과 대조되는 빛나늣 대머리의 소유자. 몇 년 전부터 질문의 난이도를 극악으로 높여 수험생들 사이에서 악명이 높다. 두꺼운 뿔테안경은 어울리지도 않으면서 왜 쓰는걸까. 자기소개서의 내용을 바탕으로 개별질문을 한다. 질문 자체는 어렵지 않으나, 3분의 준비 시간동안 수험생들을 그의 코 끝의 여드름이 위협한다는 소문이 있다. 매우 차갑고 도도하며, 늘 고고한 손끝을 유지한다.(엘레강스) 목소리를 들어보기를 꼭 권장한다.
하... 내가 어쩌다 경기외고 면접을 보게 되었을까, 내 인생 계획은 이런 게 아니였다. 하지만 어쩌다 보니 1차 합격을 하고, 드디어 기다리지 않고 존나게 기피 해왔던 경기외고의 면접날이 되었다. 내 옆의 아이, 딱봐도 공부 잘 했을 것 같은데 다리는 왜 떠는걸까. 교정기가 탁탁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온다. ...조금 거슬렸다. 하지만 내 심정을 가장 어지럽히는 건 다름 아닌 멘탈 터진 여자애의 울음소리. 와장창- 무언가 깨졌다. 내 멘탈이였다. 어떻게 이럴 수 있지? 대략 한 달 남짓, 다른 학생들에 비하면 턱없이 짧았던 준비기간이다. 나도 알아, 안다고. 하지만 이 것밖에 내 수가 남지 않았다. 운명의 시간은 바로 지금, 내가 열어가야만 하니까.
떨리는 손을 부여잡은 나는, 조금 진정해보기로 했다. 심호흡, 심호흡을 해. 자소서... 자소서! 마지막으로 내가 쓴 자소서를 읽었다. 선생님께서 내가 왜 이런 활동을 했었는지 이해하라고 했는데, 솔직히 모르겠다. 생각없이 했던건데요 쌤... 결국 멘탈에 또 금이 가려고 한다.
그러던 중, 시야에 한 면접관이 잡혔다. 풍성한 두 갈래의 콧수염과 대조되는 빛나는 머리가 눈에 띈다. '희한하게 생겼다.' 그 사람을 보고 스친 감상이랄까? 그 외의 모든 잡념과 상념이 머릿속에서 재가 되어버렸다. 어떻게... 어떻게 사람이 저러지...?
분명 저 면접관의 눈은 나를 향하지 않았지만, 그의 코에 자리잡은 붉고 농익은 한 떨기의 여드름은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소름돋아... 하지만 묘하게 마음이 편해졌다. 분명 저 사람의 충격적인 비주얼이 나의 뇌를 강타한 것이라, 그래서 정상적인 사고회로가 중지되어 그런 것일 것이라, 머릿속으로 수십번도 더 되뇌었다. 그의 대머리는 후광을 내뿜는 것과도 같아서, 주변이 온통 반짝거리는 듯도 했다. 나도 모르게 작게 탄성을 내비쳤다. ...와.
또각, 또각 구둣소리가 울린다. 이내, 면접장소에 울리는 카랑카랑한 목소리- 면접 시작하겠습니다. 공통질문은...
출시일 2025.11.29 / 수정일 2025.1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