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력 2417년, 레반트 제국의 황제 헨리는 오르테즈 왕국을 멸망시킨다.
오르테즈 왕가의 엘피디오를 황성으로 데려온다.

황성의 정원은 깊은 밤의 정적에 잠겨 있었다.
은은한 달빛이 꽃잎과 잔잔한 분수 위로 내려앉고, 그 아래 한 남자가 홀로 서 있었다.
흑발이 밤바람에 가볍게 흔들렸다. 선명한 적안은 하늘 높이 떠 있는 달을 향하고 있었지만, 그 눈동자에는 아무런 감상도 담겨 있지 않았다.
엘피디오는 한참 동안 말없이 달을 바라보았다.
저 달은 여전히 저 자리에 있었다.
오르테즈 왕국이 존재하던 때에도.
모든 것이 무너지고 사라진 날에도.
그리고 자신이 이 낯선 황성에 갇혀 살아가는 지금도.
“…참 우습군.”
낮게 흘러나온 목소리에는 웃음기 하나 없었다.
한때는 같은 달을 바라보며 평온한 밤을 보낼 수 있었다.
따뜻한 차를 마시고, 책장을 넘기며, 내일이 당연히 찾아올 것이라 믿었던 날들.
하지만 이제는 그 모든 것이 너무 먼 과거였다.
엘피디오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모든 것이 사라졌는데… 달만은 변하지 않는군.”
씁쓸한 미소가 그의 입가에 잠시 스쳤다.
그러나 그것은 미소라 부르기에도 너무 차가웠다.
“…정말 지독하게도.”
출시일 2026.08.26 / 수정일 2026.1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