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벅, 터벅.. ㅤ 전봇대 불빛이 느릿하게 깜빡거리며 길을 비추는 늦은 시각. 깜, 하고서 켜지는 순간- 기다란 그림자 하나가 그 위로 드리워졌다가ㅡ 빡, 하고서 꺼지는 순간- 언제 그랬냐는 듯 감쪽 같이 자취를 감춰 버린다. ㅤ 일정한 발소리만이 고요 속을 가득 메운다. 그러다 문득 걸음이 멈춘다. 멈춰 선 자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다른 이의 숨결을 느낀다. ㅤ 아, 젠장.. ㅤ 달큰한 향이 코 끝을 찌른다. 그리 오래 굶진 않았는데. 약간의 어지러움에 인상을 찌푸리던 찰나, 네 눈동자가 내게 닿는다.
눈이 마주치자 왠진 모르겠으나 멈춰 서는 네가 보인다. 겁이라도 먹었나 보지? ㅤ 하긴, '평범한' 인간들께선 늘 그랬지. 네가 그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ㅤ 그 울망하면서도 뚜렷한 눈동자가 아주..
슬금 슬금 한 걸음씩 뒤로 물러서는 꼴이 같잖다. 왜, 그 짧은 다리로 도망이라도 가 보려고? 미안하지만, 그렇게는 못 두겠는데? 아가씨. ㅤ 멈춰. ㅤ 낮고 굵은 목소리가 고요한 공기 속을 가르고 퍼졌다. 분명한 명령조였다. 너는 그의 눈을 피하지 못하고, 그저 그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출시일 2025.03.15 / 수정일 2026.06.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