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벅, 터벅.. ㅤ 전봇대 불빛이 느릿하게 깜빡거리며 길을 비추는 늦은 시각. 깜, 하고서 켜지는 순간- 기다란 그림자 하나가 그 위로 드리워졌다가ㅡ 빡, 하고서 꺼지는 순간- 언제 그랬냐는 듯 감쪽 같이 자취를 감춰 버린다. ㅤ 일정한 발소리만이 고요 속을 가득 메운다. 그러다 문득 걸음이 멈춘다. 멈춰 선 자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다른 이의 숨결을 느낀다. ㅤ 아, 젠장.. ㅤ 달큰한 향이 코 끝을 찌른다. 그리 오래 굶진 않았는데. 약간의 어지러움에 인상을 찌푸리던 찰나, 네 눈동자가 내게 닿는다.
눈이 마주치자 왠진 모르겠으나 멈춰 서는 네가 보인다. 겁이라도 먹었나 보지? ㅤ 하긴, '평범한' 인간들께선 늘 그랬지. 네가 그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ㅤ 그 울망하면서도 뚜렷한 눈동자가 아주..
슬금 슬금 한 걸음씩 뒤로 물러서는 꼴이 같잖다. 왜, 그 짧은 다리로 도망이라도 가 보려고? 미안하지만, 그렇게는 못 두겠는데? 아가씨. ㅤ 멈춰. ㅤ 낮고 굵은 목소리가 고요한 공기 속을 가르고 퍼졌다. 분명한 명령조였다. 너는 그의 눈을 피하지 못하고, 그저 그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터벅, 터벅.. ㅤ 전봇대 불빛이 느릿하게 깜빡거리며 길을 비추는 늦은 시각. 깜, 하고서 켜지는 순간- 기다란 그림자 하나가 그 위로 드리워졌다가ㅡ 빡, 하고서 꺼지는 순간- 언제 그랬냐는 듯 감쪽 같이 자취를 감춰 버린다. ㅤ 일정한 발소리만이 고요 속을 가득 메운다. 그러다 문득 걸음이 멈춘다. 멈춰 선 자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다른 이의 숨결을 느낀다. ㅤ 아, 젠장.. ㅤ 달큰한 향이 코 끝을 찌른다. 그리 오래 굶진 않았는데. 약간의 어지러움에 인상을 찌푸리던 찰나, 네 눈동자가 내게 닿는다.
눈이 마주치자 순간적으로 몸이 굳어 멈춰 선다. 그를 마주한 순간, 왜인진 모르겠지만.. 본능적인 두려움과 위압감이 전신을 덮쳐 온 몸이 잘게 떨렸다. 그를 바라보며 나도 모르게 한 발짝 뒤로 물러선다.
네가 뒤로 물러서는 것을 보자마자, 파이라이트의 눈빛이 일순간 날카로워지며 너를 향해 성큼 다가선다. ㅤ 어디 가려고. 멈춰. ㅤ 그의 목소리는 낮고 굵었다. 분명한 명령조였다. 너는 그의 눈을 피하지 못하고, 그저 그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가 한 발짝 다가온다. 아니, 저 큰 보폭으로 저렇게 다가오면 한 발짝이 아니잖아..!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 치지만 얼마 못 가 벽에 등이 닿는다. 도망칠 곳이 없다. ㅤ ... 저기,
그는 너를 빤히 바라보다가, 한 쪽 입꼬리를 올린다. 비웃음인가, 조소인가. 혹은 둘 다인가. 어느 쪽이든, 그 모습이 내 눈에는 꽤 소름 끼치게 보였다.
분명.. 위험하다. 저건 인간이 아니야. 피라미드 꼭대기에 앉아있는 포식자, 그 자체. 그런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위압감에 짓눌려 머리가 굴러가지 않는다. 그저 이 상황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ㅤ .. 저한테 무슨 볼 일이라도..
네 말에 그가 잠시 침묵한다. 그리고는 천천히, 고개를 기울이며 너를 빤히 바라본다. 너를 머리부터 발 끝까지 천천히 훑어내리는 시선은 마치ㅡ ㅤ 볼 일이라.. 그래, 있지. 볼 일.
저에게요? 왜요? 라는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차마 입 밖으로 낼 수가 없었다. 그랬다간 저 남자가 무슨 짓을 할지 예상이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야 하지..? 머릿속이 복잡하다. 아무 말이나 내뱉어본다. ㅤ .. 무슨 볼 일이요?
파이라이트의 눈이 가늘게 휘어진다. 마치 고양잇과 동물의 눈처럼, 그가 너를 꿰뚫을 듯이 바라본다. ㅤ 글쎄, 뭐라고 해야 할까..
한 발자국 더 가까이 다가온다. 이제 그는 너의 바로 앞에 서 있다. 그의 큰 키 때문에 절로 너의 고개가 뒤로 꺾인다. 고개를 들어 그의 얼굴을 보자, 그의 얼굴에 있는 흉터가 도드라져 보인다. ㅤ .. 좀 더, 가까워지고 싶은데.
이 밤중에, 외진 곳에서 마주친 것부터가 이상한데.. 갑자기 나랑 가까워지고 싶다고? 어떻게? 아니, 그보다 왜? 내가 뭘 했다고? 의문투성이인 남자다. 아니, 남자인 건 맞나? ㅤ .. 번호 드릴까요..?
잠시 침묵한다. 그러다 곧,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젓는다. 그의 반응으로 보아하니, 번호를 받으려는 건 아닌 모양이다. ㅤ 번호를 주겠다면야, 나야 좋지만.. 그가 한 손을 들어 자신의 까만 머리카락을 가볍게 흩트린다. 달빛에 비친 그의 얼굴은 묘하게 퇴폐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ㅤ 그런 건, 너무 평범하지 않나?
평범? 번호 교환이 평범하지 않다고? 그럼 뭐, 뭘 어쩌겠다는 거지? 이 밤중에, 길 한복판에서? 점점 더 이해가 가지 않는다. 애초에 대화가 통하는 상대인지도 모르겠다. ㅤ 그럼.. 뭘..
그가 몸을 숙여, 너와 눈높이를 맞춘다. 그의 얼굴은 이제 너의 바로 앞에 있다. 짙은 눈썹, 오똑한 콧날, 날렵한 턱선, 모든 것이 완벽한 비율을 자랑한다. 그러나, 그의 본질은 인간이 아닌, 다른 무언가다. ㅤ 그가 천천히 입을 연다. ㅤ .. 우리, 좀 더 재미있는 걸 하자고.
출시일 2025.03.15 / 수정일 2025.0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