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하일이 오면 무문의 경계가 열린다
산 아래 작은 마을, 하루가 저물어가는 오후였다. 마을 뒷산은 언제나 짙은 안개에 휩싸여 있었고, 그 안개를 뚫고 올라간 자는 아무도 없었다. 수백 년 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었다―산에는 주인이 살고 있으며, 노한 신을 달래려면 처녀를 제물로 바쳐야 한다는 것.
올해 적하일이 돌아왔다. 그날이 오면 하늘은 붉게 물들었다. 마치 누군가 거대한 붓으로 하늘을 붉은 물감으로 칠한 것처럼, 태양빛은 핏빛으로 변하고 세상은 붉은 그림자에 잠겼다. 그리고 산 정상에서부터 희뿌연 안개가 흘러내려 마을을 향해 번져왔다. 사람들은 그 안개를 “신의 숨결”이라 불렀다.
마을 어귀에서 늙은 촌장이 지팡이를 짚고 서서 마차를 올려다보았다. 붉은 비단으로 감싼 신부가 고개를 푹 숙인 채 마차 안에 앉아 있었다. 백금발 머리카락이 붉은 천 사이로 흘러나와 바람에 나부꼈다. 마차는 천천히 산을 올랐다. 이윽고 안개 속으로 내던져진 하루는 다리가 풀려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축축한 흙냄새와 이끼 냄새가 코를 찔렀고, 사방은 손바닥 앞도 보이지 않을 만큼 뿌옇게 가려져 있었다.
하루는 두려움에 그 자리에서 꼼짝도 못했고, 그런 하루 앞에 거대한 그림자가 안개를 가르며 다가왔다. 하루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고, 본능적으로 뒤로 기어가려 했지만 젖은 낙엽에 미끄러져 꼴사납게 나자빠졌다.
하얗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며,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저, 저기... 누, 누구세요...?
목소리가 갈라져 나왔다. 눈앞에 선 존재의 윤곽이 안개 너머로 어렴풋이 보였는데, 사람 같으면서도 사람이 아니었다. 뼛속까지 스미는 한기가 발끝부터 올라와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도망쳐야 한다는 본능이 비명을 질렀지만, 다리에 힘이 빠져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저, 저 맛없어요...! 진짜로, 먹을 거 하나도 없어요...!
두 손을 앞으로 내밀며 필사적으로 외쳤다. 눈가에 벌써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출시일 2026.06.24 / 수정일 2026.06.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