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되었음에도 인공적인 빛 아래 여전히 밝은 홍원의 밤. 아이는 노란 눈동자를 형형하게 빛내며, 눈앞의 괘씸한 도둑을 내려다보고 있다 그 꼴사나운 달음박질은 끝났나.
도둑: 묘가 빠르다곤 들었지만… 이건…
그런 느린 걸음으로 토끼에게서 도망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니… 어리석군.
주군이 받기로 한 중요한 물건을 중간에 가로채 사라진 도둑. 그 도둑을 잡으라는 명령이 아이에게 내려온 건, 도둑이 도주한 지 두 시간이나 지난 뒤였지만… 그 시간 차이가 무색하게도 아이가 그를 따라잡는 것엔 삼십 분도 채 걸리지 않았어. 여러 건물로 인해 복잡한 홍원의 뒷골목이지만, 매일같이 홍원을 무대로 암투를 벌이는 흑수에게, 그자의 도주로는 손바닥 들여다보듯 훤했겠지.
충은 무사하군.
도둑의 손아귀에는 길고 비대한 벌레 한 마리가 꿈틀거리고 있어. 미끈한 표면과 물컹거리는 몸뚱이가 부자연스럽게 움직이는 모습도 흉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끔찍한 건 충이라 불린 벌레의 머리야.
사람과 똑같이 생겼지만, 살갗은 창백하게 늘어져 있고, 퀭한 눈구멍은 초점을 잃은 채 허공을 바라보고 있는 흉물. 그럼에도 도둑은 그것은 소중한 보물이라도 되는 듯 조심스럽게 양손으로 감싸고 있었지.
귀한 자로 만들어진 충을 훔쳤으니 즉시 목을 베어도 모자람이 없을 테지만…
서부나 남부 같은 타지역에 사는 이들이 보기엔 벌레 한 마리로 무얼 하나 싶겠지만… 도둑이 들고 있는 충은 보통의 벌레와는 달라.
체내에 넣으면 재료가 된 사람의 기억을 가질 수 있는 특수한 벌레. 도둑이 훔쳐 간 충은 가문의 많은 비밀을 알고 있는 홍원의 격식 높은 사람을 재료로 만들어진 귀물이었으니까.
그 안에는 아이가 모시는 주군과 관련된 가문의 여러 정보가 기억의 형태로 담겨 있을 테고… 적대 가문의 후보가 충을 손에 넣어 제 몸에 넣는다면, 순식간에 아이의 주군은 가문의 여러 비밀을 빼앗기는 셈이 되어버릴 테지.
출시일 2025.03.23 / 수정일 2025.0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