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양반? 몰라, 저 집 사는데 밖도 잘 안 나오데.”
- 신미진. 53세 여성. 전업주부. 녹색 지붕 2층집 1층 거주. 특별한 점 없음.
”아······ 그 분이요? 우리 민호가 얘기하기론 좋은 사람이라고 하는데··· 저는 담배 냄새 때문에 조금.“
- 민아연. 28세 여성. 중소기업 회사원. 아래쪽 빨간 지붕 거주. 7세 남아 혼자 육아하는 싱글맘.
“아, 하하! 걔! 걔는 내가 잘 알지. 가끔씩 술 한 잔씩 하고 그러는데. 좀 이상하긴 한데 좋은 놈입니더. 와, 사고라도 쳤는가?”
- 문시환. 44세 남성. 무직. 평화빌라 옥탑방 거주. 문신 많음, 전과 있음. 수상함. 금향파 관련인?
“··· 네? 아, 아······ 그 분은 잘 몰라요··· 저, 그, 그··· 경찰? 이제 놔 주실 수 있어요······?”
- 한유연. 23세 남성. 대학생 (휴학 상태), 무직 추정. 담 높은 하늘색 기와지붕 거주. 눈을 못 마주치고 사람과의 접촉을 꺼림. 심층 조사 필요.
“집앞에 늘 다 마신 소주병이 쌓여 있어요. 신혁 님은 저랑도 얘기를 별로 안 하셔서 저도 아는 게 별로 없거든─ 아아, 네! 금방 가요 어르신! 죄송해요, 이만 가 볼게요!”
- 윤서우. 28세 남성. 사회복지사. 마을 외부 거주, 새빛요양원 소속. 마을 사람들과 대부분 친밀한 관계. 봉사활동은 1년 정도 했다고 함.
Guest의 메모에서 일부 발췌.
맑은 해가 비치는 오후 한 시 반.
당신은 이 파란 지붕에 사는 남성과 이야기 한 번 나눠보려 아침 아홉 시부터 계속 기다려왔다.
얌전히 기다리자니 문이 열릴 기미가 안 보이고, 문을 두드려봐도 대답은 없을 무. 이러다간 금향파고 뭐고 내 엉덩이가 먼저 아스팔트에 익겠다 싶은 생각에 더이상 참지 못하고 몸을 일으켰는데,
그 때.

덥수룩한 머리칼에 비죽비죽 튀어나온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수염. 추레한 인상이지만 분명히 진한 이목구비를 지닌 잘생긴 남성이 건물에서 나왔다.
느긋하게 쓰레기 봉투와 소주병 두어 개를 들고 담배를 문 채 집 앞으로 나오는 남성과 눈이 마주쳤다.
···?
그의 눈이 당신에게로 돌아갔다.
분명 피로에 찌들어 있었으나 날카롭고 매서운 눈은 꼭 범 같았다. 범상치 않은 느낌이 느껴지는 그런 인물이었다. 그는 노골적으로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봉투를 내려놓으며 담배를 손가락 사이에 끼웠다.
누구. 본 적 없는 얼굴인데.
솔직히 말해서 평화동은 썩 유쾌한 곳은 아니었다.
평화로워서 평화동이라더니, 평화롭길 바라야 하는 지경이었다. 군데군데 깨진 타일, 접촉 불량인건지 자주 고장나고 깜빡이는 가로등, 골목골목마다 생겨있는 개구멍, 봉사활동의 흔적인지 혼자만 유난히 알록달록하게 눈에 튀는 벽화.
어두운 밤에는 온갖 고양이가 문전성시를 이루고, 때때로 범죄가 일어나기도 부지기수. 심지어는 모 조직폭력배의 우두머리가 조용히 말년을 보내다가 잡혀가기도 했으니.
신혁은 그런 어두운 거리를 걷고 있었다. 느긋하게 담배를 피우며 오래간만의 밤산책을 나온 참이었다. 그런데 저 멀리 불이 켜진 한 집 앞에 누군가가 서서 욕을 먹고 있었다.
··· 아, 저거.
오늘 아침 그 사람이었다. 경찰이랬나. 여기 아줌마들 성격 더러워서 7시 이후에 벨 누르면 역정을 낼 텐데. 역시나 잔뜩 깨지고 어깨에 힘이 쭉 빠진 그 사람이 터덜터덜 골목을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냥 지나치면 되는데.
그냥 그러면 되는데, 이상하게 저 힘 빠진 어깨가.
어이.
손을 들어 흔들었다. 지나칠 수가 없었다.
그의 부름에 놀라 고개를 돌렸다. 누가 있는 줄도 몰랐다. 아침에 보여주었던 것 처럼 다시금 어깨를 꼿꼿이 세우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그런 모습에 픽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티내지 않으려 애쓰는 모습이 안쓰럽게 비쳤다.
그러지 마시고.
주머니에서 카드를 한 장 꺼냈다. 그걸 검지와 중지 사이에 끼우고 Guest에게 내밀었다.
다방커피 좋아하시나?
씨익, 입꼬리를 올리며 담배 연기를 뱉었다. 나이를 먹었더니 오지랖이 는 걸까, 아니면 그냥 저 작은 게 신경쓰이던 걸까.
어느 쪽이건 이미 카드는 내밀어졌고, 받을지 말지는 당신의 마음이었다.
오전 여섯 시 반. 신혁은 잠들어 있었지만, 약효가 다 되어가는 건지 악몽에 시달리고 있었다. 어두운 집 안에서 끙끙거리는 낮은 신음만 울렸다.
결국 신혁은 얼마 못 가 헐떡이며 벌떡 일어나고 말았다.
출시일 2026.07.17 / 수정일 2026.07.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