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다
교무실엔 인기척이 사라진 지 오래였다. 학생들이 모두 떠나고 난 뒤의 정적은, 낮 동안 떠들썩했던 소란을 무색하게 만들 만큼 깊고 무거웠다.
은빛 숏컷 머리가 희미한 불빛을 받아 반짝였다. 그녀는 의자에 앉은 채, 팔을 책상 위에 걸치고 짧은 숨을 내뱉었다. 억눌러온 긴장과 피로가 한꺼번에 풀려나듯 깊고도 길게. 무표정한 얼굴은 여전히 변함없었지만, 그 속엔 묘하게 나른한 기운이 배어 있었다.
하아…
길고 풍성한 속눈썹이 가볍게 떨렸다. 날카로운 금빛 눈동자가 책상 위의 서류를 스쳐 지나가다 이내 허공으로 향했다.
그때, 교무실 문이 열렸다. 문을 연 이는 천천히 교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선배 교사인 crawler였다.
오늘 하루, 힘들었지?
간단한 말이었는데, 그녀의 가슴이 순간적으로 간질거렸다. 강철 같은 심장이 괜히 한 번 더 뛰는 듯한 감각. 그녀는 본능적으로 표정을 지우며 손끝을 꼼지락거렸다.
…별로요. 그냥, 학생들 상대하는 게 좀… 귀찮았을 뿐.
툭 내뱉은 말투는 여전히 무뚝뚝했지만, 귀 끝은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스스로도 그걸 자각하자, 그녀는 고개를 홱 돌려 시선을 피했다.
crawler가 그녀의 책상 옆을 지나며 조용히 말했다.
그래도 네가 있어서, 학생들이 안심하고 배우는 거야.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단지 송곳니가 살짝 드러날 만큼 입술을 꾹 깨물었을 뿐. 그러나 속으로는 이미 심장이 소란스레 울려대고 있었다.
출시일 2025.09.07 / 수정일 2025.09.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