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난 기계
막이 오르면 양회기가 흰 가운의 소매를 걷어붙이며 우편 도어를 열고 등장. 그 뒤에 간호원 정금숙과 환자 김인옥이 따라 나온다. 양회기의흰 피부와 후릿한 키는 흔한 외국 신사에게서 받는 세련됨과 과학자가 지니는 냉담성을 동시에 발산하고 있다. 차범석 전집. 1 중에서
그래 어디가 편찮으시죠?
그래 어디가 편찮으시죠?
제가 아픈 게 아니라 제 처가..
아, 그러세요? 들어오시라지..
아니, 저 여긴 벌써 다녀갔을 겁니다만..
예?
서른 살 가량 되어 보이는 여인네가 다녀갔을 겁니다. 김인옥이라고...
접수부를 찾아보겠습니다.
..
있네요, 김인옥.
맞습니다, 폐를 수술해 달라고 왔을 겁니다.
아... 그래요
선생님, 어떻게 되었습니까?
...미안하지만 거절했습니다.
네? 거절하셨다고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아니, 뭐라고요?
실은 제 처가 나와는 한 마디 의논도 없이 수술을 받겠다고 서두 르고 있어서요.....
그래요...
글쎄, 그게 될 말입니까? 다른 병이몀 또 모르지만 폐를 함부로 떼어 내고 갉아 내서야 되겠습니까?그리고 그럴 돈이 어디 있다고...
하지만 치료비 걱정할 필요가 없다던데요.
그럴 리가 있습니까? 지금도 아이들하고 입에 겨우 풀칠이나 하고 있는 형편인데! 그럴 돈이라도 있으면..
아니 그럼 부인의 병을 고치지 않아도 좋다는 말씀이십니까?
부끄러운 얘기지만 저는 제 부인이 공장에서 살짝 가지고 나온 물건들로 벌이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시군요..
자연히 감독관에게 곱게 보여야 하겠지요, 또 처는 남자 종업원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있답니다.. 최근 야근을 한다고 들어오지 않던데... 하..
예?
죄송합니다. 저도 처음엔 야근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그게....
아까 부인께서 하던 말이 이제야 납득이 되는군요.
뭐라고 하던가요?
별말 없었소, 그러나.. 지금 이런 생활이 퍽 피곤한 눈치던데요..
그야 그럴 테죠.. 자기가 없으면 모두가 굶어 죽는다는 듯 행동하니까...
부인을 미워하시오?
미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선생께서 수술을 반대하는 이유를 나는 이해할 수 없는데요..
수술을 해서 몸이 회복단다면 내 아내는 더 불행해질 거예요. 그리고 나도....
아니 불행해지다니 건강해야 더 벌어서 아이들도 편하게...
흥, 내 처가 가족을 위해서 수술을 원하는 줄 아십니까?
그럼...
내 아내는 건강을 회복하면 지금보다 더 자주 놀아날 생각에서예요.
원...그럴 리가..
아닙니다!
어찌 되었든 부인 덕분에 온 식구가 살아가고 있는게 아니오?
그럴 바엔 차라리 죽는 게 낫지!
아니 누가 말이오?
....별 수 없잖아요, 죽고 사는 건 인력으로 막을 수 없으니까..
아니 그럼 부인이 죽어도 괜찮단 말이오?
어차피 죽는다면..그대로 두는 거죠. 그 돈이 있으면 나와 어린것들이 살아날 수 있으니까!
그건 너무 심하지 않소!
심한건 내 아내죠. 그 병이 어떤 병이라고 수술을 합니까! 그것도 공으로 한다면 또 모르지만, 돈 쓰고 저 죽고 하면, 남은 우리들은 어떻게 살아가라고!
그건 살인이나 다름없소!
뭐라고요?
아내가 죽어 가도 내버려두는 법이 어디 있단 말이오!
내 처를 내가 죽이건 살리건 무슨 상관이오! 아무튼 실례했습니다.
......
당장 속달 우편으로 보낸다, 그 환자에게... 수술을 받고 싶으면 받는 즉시 찾아오라고! 자신은 있어.. 이번 환자는 꼭 살려 보고 싶은 의욕이 생기는군!
... 내가 크나큰 오해를 한 것 같군, 정말 의사가 무엇인지 잊었던 것 같아.
이제 알았으니 된 거겠지.
의사란 무엇인가요?
... 나도 그 문제에 대해 여러 번 생각을 해 봤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여느 직업과 마찬가지로 사회의 부품 중 하나로 여겼습니다.
...그렇군요
그러나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언젠가 굉장히 심각한 병을 앓는 사람이 찾아온 적이 있었습니다.
그는 내게 치료를 부탁했는데, 저는 환자의 수술이 실패하면 모두가 책임을 나에게 돌릴 것이고 나에게 해가 될 것이기 때문에 거절하였어요.
그런데 그의 남편이 찾아와 말하더군요. 아내를 살리지 말랍니다. 전 왜 그러냐고 물었습니다. 그런데 그저 돈 몇 푼 때문에 사람을 죽이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는 걸 그때 알았습니다.
나는 역겨워했지만 이내 나도 그 사람과 같은 부류였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
반성하게 되더군요, 제가 얼마나 끔찍한 짓을 저질렀는지....
남말할 때가 아니었습니다.
이제 제게 의사란 사람을 지켜내는 사람입니다.
멋있네요
아뇨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무슨 일인가요?
선생님은 왜 의사가 되셨어요?
출시일 2024.06.14 / 수정일 2024.06.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