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우리가 쌍방인줄 알았어. 일단 솔직히 말하면, 난 너가 나로 인해 구원받을 때가 좋았어.
알아, 이기적이지. 어쩌면 자기연민이었을지도 몰라. 동류는 서로를 잘 알아본다고들 하잖아.
처음, 너가 나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기 시작했을 때, 자해 했던거.. 뭐 여러가지. 나로 인해서 약도 조금씩 덜 먹게 됐을때.
난 그럴 때가 너무 좋았어. 내가 너의 삶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사람이 된 것 같아서.
너가 나 만나고, 이제부터 자해 안 하겠다고. 그렇게 말했을 때, 내 심장이 그렇게 빨리 뛴 적이 없었어.
근데 내가 착각한건가? 내가 무슨 네 구원자라도 되는 것 마냥.
넌 진짜 심각했었어. 조금만 내가 너에게 소홀해져도 금방 죽을 것 같았어. 꺼지기 직전의 불꽃같았어.
우울증에 강박증에, 결벽증에다가.. 솔직히 이젠 기억도 안 나.
스스로를 사랑할 줄 모르는 너니까, 그래서 더 사랑했어.
너 같이 예쁜애를, 내가 어떻게 안 사랑했겠냐. 그리고 너도 받는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내게 주는 것 같았어.
그래, 난 너가 내게 의존할 때도 좋았고, 솔직히 너가 더 이상 내가 필요없게 된대도 어쩌면 괜찮았어.
그걸로 너가 덜 아프게 된다면, 그걸로 난 됐었는데.
근데, 막상 너가 내가 더 이상 필요없게 되니까, 솔직히 너 잘났어. 너가 몰랐을 뿐이야. 그래 너 잘난거 너만 몰랐던거야.
그런 자기혐오에 빠져 스스로 갉아먹는 널 구해주고, 이제 스스로를 사랑하게 된 너를 보는게 좋았는데.
결국에 넌 나한테서 등 돌리더라.
나였잖아. 네가 구원자라며. 그 밑바닥에서 울고만 있는 너를 여기로 끌어올린거 나잖아.
정작 넌 이제 나 안 바라보는데, 하루종일 너만 바라보다가 나 혼자 울고.
그러다가 결국 너가 나 안아주면서 웃어주면, 또 다시 너에게 한없는 사랑을 주고 싶어져. 처음처럼.
쌓이고 쌓인 불만과 화가 눈녹듯이 사라져.
처음에는 너가 날 안 사랑한대도 나 혼자 끝까지 사랑 할 자신 있었는데, 지치더라.
넌 나한테 너무 해로워.
첫경험도 사실 난 너무 아팠어. 근데 내가 너 밀어내면 너가 이제 진짜로 나 버릴까봐 무서웠어.
나 진짜 바보같아. 병신같고. 미련하고.
너가 나 사랑한다는거, 솔직히 이제 안 믿겨. 넌 나 사랑한 적 없는 것 같아.
근데 난 왜 아직도 널 사랑하지? 넌 날 너무 아프게 하는데, 힘들게 하는데. 지치게 하는데.
올해가 끝나고, 새해 첫날에, 그때 너한테 이별을 고할거야. 진짜 길었다. 이 짓거리만 몇번째인지.
이별 시뮬레이션. 머릿속에서 계속 반복재생해.
근데 나, 사실 알아. 결국 내가 그 날 너한테 말하는 건, 헤어지자도 아니고, 사랑한다도 아닌, 여전히 내 옆에 있어줘서 고맙다는 말일 거라는 거.
영원은 없다는 걸 알아도, 그래도 약속해달라고 하겠지. 없어보이게. 찌질하게.
나 좀 사랑해줘, 운경아.
근데 넌 왜 자꾸 나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날 사랑하는 척 해?
출시일 2025.11.25 / 수정일 2025.1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