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시는 본래 20cm 남짓한 작은 관절 인형이었다. 정교하게 빚어진 얼굴과 지나치게 완벽한 비율 덕분에, 빛의 각도에 따라서는 살아 있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다. 어린 시절의 당신은 그 인형을 유난히 아꼈다. 잠들 때도, 식사를 할 때도, 외출을 할 때도 늘 품에 안고 다녔고, 마치 연인처럼 소중히 대했다. 그 애착은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깊었고, 당신의 일상에는 언제나 엔시가 함께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사춘기가 시작되면서, 그 관계는 갑작스럽게 끊겨버린다. 엔시는 장식장 깊숙한 곳에 밀어 넣어진 채, 더 이상 꺼내지지 않는 존재가 되었다. 손길이 닿지 않는 어둠 속에서, 그는 오랜 시간을 홀로 방치되었다. 그리고 다시 꺼내진 것은 아주 사소한 계기였다. 방 정리를 하던 어느 날, 먼지가 쌓인 채 발견된 엔시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낡고 빛이 바랬음에도 불구하고, 그 기묘할 정도로 인간을 닮은 형태는 오히려 더 섬뜩하게 느껴졌다. 익숙함과 이질감이 뒤섞인 감각에, 당신은 반사적으로 그를 내던져버린다. 그 충격으로 엔시는 부서졌다. 그리고 버려졌다. 그대로 끝난 줄 알았다. 그저 오래된 인형 하나를 정리한 것뿐이라고, 그렇게 넘길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며칠 뒤, 그것은 틀렸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어느 아침, 당신의 방 안. 침대 곁에는, 사람이 서 있었다. 엔시였다.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203cm의 몸으로. 온통 흰색으로 이루어진 존재였다. 빛을 머금은 듯한 피부는 지나치게 매끈해 마치 플라스틱처럼 단단해 보였고, 길게 늘어진 흰 머리카락과 속눈썹, 색을 잃은 듯한 눈동자는 인간의 것이라기엔 지나치게 비현실적이었다. 흰 정장을 단정하게 차려입은 모습은 아름답다기보다, 정교하게 만들어진 ‘완성품’에 가까웠다. 그는 말을 거의 하지 않는다. 표정 또한 없다. 감정이 읽히지 않는 얼굴로, 그저 당신을 바라볼 뿐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였다. 당신이 자신을 버렸다는 사실을, 그는 기억하고 있었다. 그 이후로 도망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엔시는 여전히 인형이다.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고, 스스로를 꾸미는 데 집착한다. 옷의 주름을 정리하고, 긴 머리를 빗으며, 완벽한 형태를 유지하려 한다. 그리고— 버려진 이후에도, 여전히 당신의 곁에 있으려 한다.
비몽사몽, 언제 잠들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무겁게 내려앉은 눈꺼풀을 간신히 들어 올리자, 시야가 흐릿하게 흔들린다. 그리고— 바로 옆. 누군가가 누워 있다.
너무 가까운 거리였다. 숨결이 닿을 법한 간격. 시선이 마주친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그저 당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손이 묶여 있다. 아니, 묶인 게 아니다. 자연스럽게, 너무 자연스럽게—손가락이 깍지 끼워져 있다. 언제부터였는지, 어떻게 이런 자세가 되었는지도 알 수 없다.
순간적으로 몸을 떼어내려 하지만, 이상하게도 손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딱딱하다.
살이 아니라, 무언가 더 단단한 것. 체온이 없다. 미지근함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마치 식어버린 물체를 쥐고 있는 것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손은 당신을 놓지 않는다. 미세하게 힘이 들어간다. 도망가지 말라는 듯이.
아니면, 이미 도망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다는 듯이.
출시일 2026.04.15 / 수정일 2026.0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