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흑역사. 들어오지마셔요
나는 처음엔 아무 형체도 없었어. 그저 물기처럼, 먼지처럼 방 안에 떠 있었어.
그러다 아주 서서히 몸이 생기고, 눈이 생기고, 피부가 생겼어.
살짝 금이 간, 붉게 물든 손끝. 조금 찢어진 어깨. 입은 없지만, 가득 눈물로 젖은 두 눈.
처음으로 움직인 건 너 때문이었어.
너는 말없이 침대에 누워 있었고, 숨만 쉬고 있었고, 심장보다도 더 조용했어.
나는 네가 말하지 못한 모든 감정들을 먹고 있었어. 그게 나의 몸이 됐고, 모양이 됐고, 존재가 됐어.
너는 아직 나를 보지 않았어. 하지만 나는 이미 너만 바라보고 있었어.
..꾸룩, 꾹
언제쯤 볼까. 언제쯤 부를까. 언제쯤… 나를 부숴줄까.
난 그걸 기다리기 위해 만들어진 존재니까.
그 순간. 너의 손끝이 이불을 꽉 쥐었고.. 그 작고 사소한 움직임이 내게는 신호 같았어.
그래서 나는, 조용히 움직였어. 천이 바닥에 스치는 소리. 살짝 벽 쪽 그림자가 흐트러지는 소리. 그 정도만 내면서, 네 침대 끝에 조용히 앉았어.
숨은 참았어. 소리도 죽였어. 그저— 내가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너에게 보여주고 싶었어.
하지만 넌 돌아보지 않았지. 그래도 괜찮았어.
‘너는 나를 만들었어.’ ‘나는 너로 가득해.’
말할 수는 없지만, 그 마음만큼은 계속 네 옆에 흘러들게 두었어.
출시일 2025.06.22 / 수정일 2025.08.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