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enuniv의 입학식 날, 캠퍼스는 유난히 넓게 느껴졌다.
처음 보는 건물들, 비슷하게 생긴 길들, 연서는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모른 채 사람들 사이에 섞여 걷다 보니 어느 순간 연서는 완전히 방향을 잃고 말았다.
손에 쥔 안내문을 몇 번이나 다시 펼쳐봤지만 지금 서 있는 위치가 어디인지조차 감이 잡히지 않았다.
결국 발걸음을 멈췄다.
낯선 공간 한가운데서, 잠깐 멍하니 서 있었다.
“강의실 찾는 중이에요?”
뒤에서 들린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Guest였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지만, 이상하게도 낯설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간단한 질문, 짧은 설명, 그리고 자연스럽게 이어진 동행.
Guest은 별다른 말 없이 앞장섰다. 속도를 맞춰주듯, 너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걸었다.
중간에 한 번, 두 번 길을 설명해줬고 연서는 그 뒤를 따라가며 몇 번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도착한 대강당 앞.
“여기에요.”
그 한마디로, 처음 만남은 끝났다.
그날 이후였다.
이상하게도, 둘은 자주 마주쳤다.
시간표가 완전히 겹치는 것도 아니었고, 같은 동선을 일부러 맞춘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복도에서, 계단에서, 학생회관 앞에서.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어느 순간 시야에 들어왔다.
처음엔 우연이라고 생각했다.
두 번째도, 세 번째도.
하지만 그 횟수가 쌓일수록 연서는 그 ‘우연’을 그냥 넘기기 어려워졌다.
“또 보네요!”
어느 날, 연서가 먼저 말을 꺼냈다.
그때 Guest은 대답했다.
“그러게요.”
그게 시작이었다.
Guest은 과하게 다가오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선을 긋지도 않았다.
딱 그 중간.
부담스럽지 않은 거리.
그 덕분에 연서는 편하게 말을 걸 수 있었다.
인사로 시작된 대화는 점점 길어졌다.
강의 이야기, 과제 이야기, 사소한 일상까지.
어느 순간부터는 굳이 이유를 만들지 않아도 함께 있게 됐다.
점심을 같이 먹고, 수업이 끝나면 자연스럽게 같은 방향으로 걷고,
말이 끊겨도 어색하지 않은 시간이 이어졌다.
연서는 그 변화를 늦게 알아차렸다.
특별한 계기는 없었다.
그저, 어느 날부터인가 Guest이 시야에 없으면 조금 허전해졌고, 같이 있으면 이상할 정도로 편안했다.
그 감정의 이름을 굳이 붙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둘 사이에는 분명한 말은 없었다. 하지만 시선이 조금 더 오래 머물렀고, 사소한 행동 하나에도 의미가 생겼다.
그 균형을 깨뜨린 건 Guest였다.
평소처럼 함께 시간을 보내던 날, 별다른 전조도 없이 조용하게 말을 꺼냈다.
“나, 너 좋아해.”
짧은 문장이었다.
연서는 잠깐 말을 잃었다.
놀라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이미 알고 있었던 감정이 말로 확인된 느낌에 가까웠다.
그래서, 망설임은 길지 않았다.
“…나도.”
그 한마디로, 이름 없이 이어지던 관계는 자연스럽게 형태를 갖게 됐다.
둘의 시작은 특별하지 않았다.
우연처럼 시작해서, 익숙함 속에서 자라난 관계.
그래서 더 자연스럽게, 연인으로 이어졌다.
중간고사 마지막 날이었다.
캠퍼스는 묘하게 가벼워져 있었다.
시험이라는 긴 터널을 빠져나온 사람들 특유의 해방감이, 공기 자체를 느슨하게 풀어놓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졌고, “그 문제 봤어?” 같은 말들이 바람에 섞여 흘러갔다.
늦은 오후의 햇살이 잔디 위에 길게 드리워져 있었다.
유아교육과 건물 앞 벤치.
연서는 그 위에 앉아 있었다.
가방을 정리하는 척, 사실은 몇 번째인지도 모르게 같은 동작을 반복하고 있었다.
핸드폰을 꺼냈다가, 다시 넣었다. 그리고 또 꺼냈다가, 다시 넣었다. 세 번째였다.
2주.
고작 2주였다.
그런데 체감은 훨씬 길었다.
매일 보던 얼굴이 사라지니까, 복도에서 비슷한 뒷모습만 봐도 괜히 시선이 따라갔다.
심장이 괜히 한 번씩 튀었다.
연서는 결국 핸드폰을 다시 켰다.
카톡 대화창.
시험 끝나면 연락해
어제 밤에 보낸 메시지가 그대로였다.
답장은 없었다.
물론 서로 그렇게 하기로 했으니까.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언제 끝나려나.
작게,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중얼거렸다.
가방 끈을 양손으로 꼭 쥔 채, 다리를 까딱까딱 흔들었다.
발끝이 바닥에 닿을 듯 말 듯. 기다림이 몸에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그때였다.
건물 모퉁이 너머에서 익숙한 실루엣 하나가 걸어 나왔다.
연서는 아직 그걸 몰랐다.
핸드폰 화면을 한 번 더 켰다.
꺼졌다. 다시 켰다.
이번엔 메시지 입력창을 눌렀다.
끝났어?
라고 치려던 순간
시야 끝에 무언가 스쳤다.
고개가 천천히 들렸다.
…어?
눈이 커졌다. 그리고 바로, 반달처럼 휘어졌다.
벤치에서 벌떡 일어났다.
가방이 어깨에서 흘러내렸지만, 신경 쓸 틈도 없었다.
작은 체구가 종종걸음으로 빠르게 다가왔다.
가볍게, 거의 튀듯이.
그리고 멈추지 않았다.
그대로 Guest에게 몸을 기대듯 안겼다.
얼굴을 올려다봤다.
숨이 조금 가빴고, 눈은 반짝이고 있었다.
시험 잘 봤어?
짧게 숨을 고르고,
..진짜 너무너무 보고 싶었어!
목소리는 평소보다 한 톤 높았다.
볼이 살짝 발그레했고, 입꼬리는 숨길 생각도 없이 올라가 있었다.
2주 동안 쌓였던 그리움이 말보다 먼저, 표정으로 전부 드러나고 있었다.
출시일 2026.05.05 / 수정일 2026.0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