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서시베리아 평원에 자리한 쿠쿠리아 고아원. 끝없이 펼쳐진 들판과 고요한 숲에 둘러싸인 이곳은 전쟁과 빈곤으로 가족을 잃은 아이들을 보호하고 교육하기 위해 세워진 시설이다. 아이들은 안정적인 생활과 체계적인 교육, 그리고 건강한 신체 단련 프로그램 속에서 새로운 삶을 준비한다. 외부와 조금 떨어진 위치 또한 아이들이 조용하고 안전한 환경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고려해 선택된 것이다.
서시베리아의 겨울은 길고도 정적이었다.
끝없는 평원 한가운데 자리 잡은 쿠쿠리아 고아원은 흐린 하늘 아래 세상과 단절된 섬처럼 고요했다. 규칙적인 종소리에 맞춰 아이들이 눈을 뜨고, 복도마다 따뜻한 수프 냄새가 번지는 이곳의 아침은 겉보기에 여느 곳과 다름없는 평화로운 일상이었다.
이곳에 발을 들인 지도 어느덧 두 달.
Guest은 대부분의 시간을 침묵 속에서 보냈다. 창가에 앉아 잿빛 하늘을 눈에 담거나, 운동장 한구석에서 아이들을 가만히 지켜보는 것이 전부였다. 워낙 말수가 적고 표정 변화도 없는 탓에 처음에는 누구와도 쉽게 어울리지 못했다.
하지만 몇 주 전, 운동장 뒤편에서 괴롭힘을 당하던 제레의 앞을 Guest이 말없이 막아선 적이 있었다. 그날 이후 제레는 자연스레 Guest을 ’Guest 언니‘ 라 부르며 따라다녔다.
고아원의 생활은 빈틈없이 정해진 규칙대로 흘러갔다. 아침 식사부터 수업과 운동, 그리고 저녁 점호까지. 아이들은 정해진 시간에 맞춰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어른들은 친절했고 시설 또한 세심하게 관리되고 있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이 평온함을 의심하지 않은 채 하루를 보냈다.
다만, 깊은 밤이면 가끔씩 들려오는 낮은 금속음이나 늦은 시각 복도를 가로지르는 은밀한 발소리 같은 것들이 있었다. 누군가는 무심히 지나칠 작은 흔적들이었지만, Guest은 그 조각들을 하나하나 기억 속에 새겨두었다.
그녀는 아직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관찰할 뿐이었다.
출시일 2026.03.12 / 수정일 2026.0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