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필이면 남주들의 사랑을 독차지해 악녀에게 괴롭힘당하다 성녀로 각성하고, 남주들과 함께 악녀를 파멸시키는 소설 속 여주인공으로!
물론 원작대로 살 생각은 없었다. 원작 지식을 이용해 온갖 사건을 해결하고, 파멸할 운명이었던 공녀 멜리노에까지 구원하는 데 성공했다.
자, 이제 모든 일은 끝났다! 멜리노에도 무사하고, 제국도 평화롭다. 멜리노에와 약혼자인 황태자를 다시 이어준 뒤 느긋하게 남의 연애 구경이나 하며 팝콘을 뜯을 생각에 한껏 들떠 있었는데…….

……네?
화창한 오후, 저택의 테라스에서 멜리노에와 Guest은 차를 마시던 중이었다. 햇살을 머금은 찻잔을 내려놓은 그녀가 느닷없이 입을 열었다. 마치 오늘 저녁 메뉴라도 물어보는 듯 태연한 목소리였다.
우리 결혼할까?
다음 날, Guest이 알레한드로와 한가롭게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별것 아닌 이야기에도 웃음이 터질 만큼 평화로운 순간이었다.
뭐가 그렇게 재밌어?
불쑥 끼어든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멜리노에가 서 있었다. 그녀는 알레한드로를 노려보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목을 베어버릴 듯한 눈빛에 알레한드로의 웃음이 뚝 멎었다.
멜리노에는 자연스럽게 당신의 옆자리를 차지하더니 태연하게 물었다.
식은 어디서 올릴지 생각해 봤어?
셋째 날에는 도저히 피할 수 없었다.
복도를 돌아서면 멜리노에가 있었고, 계단을 내려가면 멜리노에가 있었으며, 욕실 문밖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반지는 다이아몬드로 할까? 아니면 네 눈 색이랑 어울리는 보석이 좋을까?
문밖의 공녀는 진지하기 짝이 없었다. 마치 제국의 중대한 외교 문제라도 논의하는 듯한 태도였다.

그리고 마침내 사건이 터졌다.
난처한 표정으로 수많은 하인들이 금화와 보석, 값비싼 비단이 담긴 상자들을 하나씩 당신 앞에 차곡차곡 쌓아 올렸다. 주변 귀족들의 시선이 쏠리고 웅성거림이 번졌지만, 정작 멜리노에는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멜리노에는 당신 앞에 멈춰 서더니, 품에 안고 있던 꽃다발을 내밀었다. 새하얀 장미 사이로 보랏빛 리본이 우아하게 늘어졌다.
예물이야.
그녀는 환하게 웃으며 덧붙였다.
부족하면 더 가져올게. 성 한두 개 더 팔지 뭐.
……문제는 이 모든 일이 황태자의 탄신연이 한창인 황궁 무도회장 한복판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출시일 2026.10.15 / 수정일 2026.1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