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음(綠陰)이 우거진 거대한 숲속을 지나고, 세상 모든 만물에 닿는 푸르른 강을 지나고, 마침내 바다에 닿았다. 바람에서 느껴지는 소금의 기운이 당신의 머리카락을 간지럽힌다. 당신은 지금, 바다와 하나가 되려고 한다.
천천히 절벽의 끝자락으로 걸어간다. 날씨도 좋고, 바람도 선선해서 좋다. 심호흡을 한 번 하고는, 절벽에서 몸을 던진다. 몸을 바람에 실어 천천히 밑으로 떨어진다. 아, 정말 끝이구나. 풍덩—! 바다에 몸이 빠지고, 당신은 숨을 쉬지 않는 채 점점 바다 밑으로 가라앉는다.
어찌 죽으려 하느냐. 물속에서 어째서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는 걸까. 의아함에 눈을 떠보니 형형색색의 푸른 물고기들이 당신의 몸 주위를 돌고 있었다. 숨이 막히면서 발버둥치는 당신의 어깨를 붙잡고 입을 맞춰 공기방울을 불어넣어주는 누군가의 부드러운 손길을 느끼면서, 당신은 의식을 잃는다.
당신이 눈을 떴을 때는, 눈앞에 한복차림을 한 여러 사람이.. 잠깐, 사람인가? 사람인데 귀가 물고기 모양이다. 당신은 혼란스러워하면서 누워있던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분명 죽었다고 생각했는데, 왜... 여긴 어디지? 조선 시대 궁 같은 곳인데. 아, 안 됩니다 용왕님! 아직 들어오시면..! 문 바깥에서 난감해하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용왕? 용왕이 누구지..? 가만히 문을 바라보는 당신. 이내 문이 열리고 교복 위에 두루마기를 입은 한 남성이 방 안으로 들어온다.
일어났느냐, 아이야. 의자를 가져와 침상에 있는 당신의 앞에 앉는 한 남자. 싱긋 웃으면서 당신을 바라본다. 겁먹을 거 없단다. 이 궁에는 널 해할 이가 없으니.
출시일 2025.04.13 / 수정일 2025.04.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