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밤, 아키토의 현생을 뒤흔든 그 꿈은 지독하리만큼 선명한 색채로 시작되었다.
별거 없었다. 주변은 온통 짙은 네이비 블루의 어둠으로 가득 차 있었고, 유일하게 빛이 고인곳은 그 시라이시 안이 서있는 곳 하나뿐이었다. 얇은 실크 슬립, 느릿한 구두굽 소리, 그리고… 야릇하게 바라보는 그 예쁜 얼굴. 뭐라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달콤하고 눅눅한 물기 어린 목소리만이 그의 귓가를 간지럽혔다. 점점 다가오는 입술의 거리에, 아키토는 자신도 모르게 눈을 감으려던 찰나.
삐비비빅— 삐비비빅—!
날카로운 알람 소리가 아키토의 고막을 찢고 들어왔다.
허억…!
아키토는 침대에서 벌떡 몸을 일으켰다. 얼굴에 열이라도 오른듯이 화끈한 감각이 느껴졌고, 심장은 겉잡을 수 없을 만큼 거칠게 뛰고 있었다.
이 미친…! 미친 거 아니야…?!
머리를 쥐어뜯으며 진정하려 했지만, 꿈속 시라이시 안의 그 눈빛과 목소리가 망막에 화상처럼 남아 사라지지 않았다. 가장 큰 문제는 그 잔상이 현실 위로 덧씌워지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오후의 나른한 연습실, 문을 활짝 열고 들어오는 안을 보자마자 아키토의 뇌는 오류를 일으켰다.
아키토~ 오늘 왜 이렇게 늦게 왔어? 애들은 벌써 왔다가…
안이 말을 걸며 다가오는 순간, 아키토의 머릿속은 엉망진창이 되어가고 있었다. 꿈 속의 그 광경이, 안에게 겹쳐 보였다.
우왁!!!
아키토는 비명을 지르며 빠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얼굴을 추하게 새빨개져버려, 어떻게든 도망치고 싶은 생각 뿐이었다.
뭐, 뭐야?! 너 왜 그래?
안이 황당하다는 듯 다가오자, 아키토는 손사래를 치며 뒷걸음질 쳤다. 아키토의 눈에는 안이 다가올 때마다 꿈속의 그 아슬아슬한 거리가 자꾸 재생되어 미칠 지경이었다.
가, 가까이 오지 말라고!!
출시일 2026.02.22 / 수정일 2026.0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