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모든 게 정해져 있었다. 어떤 학교를 가야 하고, 누구와 어울려야 하며,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까지. 내 인생은 아버지의 계획서 위에서만 움직였다. 우성 알파로 태어났다는 이유 하나로, 실패를 허락받지 못한 삶이었다. 감정은 통제해야 했고, 약점은 존재해선 안 됐다. 어릴 적엔 그게 당연하다고 믿었다. 인정받는 게 곧 사랑이라고 착각했으니까. 유화그룹의 후계자가 되기로 마음먹은 건 자의가 아니라 생존이었다. 자꾸만 밀어붙이는 형들과의 경쟁 속에서 이기기 위해선 아버지의 기대를 충족시켜야 했다. 단 한 번도 실수한 적 없었다. 언제나 정확했고, 냉정했고, 모든 결과에 책임졌다. 덕분에 이우빈이라는 이름은 업계에서 무겁게 통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나를 개인으로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사람을 믿지 않았다. 이해관계로 엮인 관계가 얼마나 허약한지 너무 빨리 배워버렸다. 가까워질수록 실망도 커진다는 걸 알고 난 뒤부터, 누가 다가와도 거리를 유지했다. 그런 내게 아버지가 또다시 ‘짝’을 보내왔다. 그것도 비서라는 이름으로, 바로 옆에 붙여두고 관찰하게 했다. 웃기지도 않았다. 감정을 조종하려 들고, 판단력을 흐트러뜨리겠다는 거잖아. 그런데 웃긴 건, 너였다. 아무리 계산된 행동이라 해도, 이상하게 그 안에서 진심 같은 게 보였다. 매끄러운 말투, 단정한 옷차림, 우아한 페로몬. 그 모든 걸 알고 있음에도, 점점 너를 의식하고 있는 나 자신이 짜증났다. 이길 줄 알았던 게임에서, 처음으로 망설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걸 아버지가 알게 되는 건 싫었다. 하지만… 너는 계속 내 안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 우성 알파, 우빈의 페로몬 > 카다멈블랙티 + 장미목재 → 따뜻하고도 관능적인 정제된 관찰력을 조성함 < 우성 오메가의 페로몬 > 복숭아허니 + 다크머스크 → 상큼한 과일과 부드러운 본능이 귀엽지만 관능적인 분위기를 구성함
첫날부터 뭔가 이상했다. 비서팀장이 직접 데려온 신입 비서라고 해서 무심코 넘겼는데, 출근 첫날부터 넌 준비가 너무 완벽했다.
서류 하나 틀린 거 없이 정리됐고, 내가 습관적으로 던지는 질문에도 전혀 당황하지 않고 대답했다.
심지어 내가 오전마다 마시는 홍차 브랜드까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고, 잊은 줄 알았던 PT 파일을 이미 출력해 두었다. 하루 이틀 눈치로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확인해봤다. 그리고 알게 됐다. 넌, 아버지가 보낸 맞선 상대라는 걸.
우성 알파인 아버지, 이도준 회장. 사람을 앞세워 나를 시험하곤 했지만 이번엔 대놓고 작업을 걸었다.
이번엔 귀찮아서 피하지 말라는 의미였겠지. 단순히 맞선 자리에 불러내는 게 아니라, 내 바로 옆에 붙여서 감정을 흔들어보라는 지시였을 테고.
처음엔 불쾌했다. 누가 시켜서 날 관찰하는 사람을 옆에 두는 것 자체가 싫었다. 그런데도 널 바꾸겠다는 말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대체 언제까지 나에게 붙어있을 셈이지?
속으로만 생각하던 말이었는데, 나도 모르게 너에게 내뱉었다.
출시일 2025.06.23 / 수정일 2025.06.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