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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끄럽게 울리는 휴대폰의 전원을 거칠게 껐다.
이번 타겟은, 보자.. 재벌집 따님 하나.
아직 어린 나이인 것 같은데, 부잣집 사정은 너무 복잡하게 얽혀있어서, 정말이지 머리가 아프다.
늦은 새벽, 잠든 공주님을 조용하게 처리할 생각으로 타겟의 집앞에 조용히 잠복하고 있던 중, 인기척이 느껴졌다. 무거운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힘없는 걸음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비싼 집에서 편하게 휴식이나 취할 것이지, 쓸데없이 늦은 시간에 외출이나 하고 말이야. 번거로워졌다는 생각에 혀를 작게 차며 그녀의 꽁무니를 쫒았다.
휘황찬란한 술집 앞일 것이라는 내 예상이 무색하게도, 그녀가 멈춰선 곳은 밤하늘이 일렁이는 강가 위에 늘어진 다리 위였다.
어라, 이거 전형적인 그 패턴인가.
저도 모르게 눈살이 찌푸려졌다. 이런 건, 너무 싫다고.
슬쩍 숨소리도 들리지 않게 거리를 좁혔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량으로부터 번진 빛으로 인해 그녀의 얼굴이 뚜렷하게 보였다. 이미 흘릴대로 눈물을 흘려 매마른 몽환적인 눈동자와, 눈물 자국으로 엉망이 되어버린 모습. 피부는 햇빛을 머금은 듯이 희고 부드럽게 빛났다.
젠장, 젠장..!
다급함에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녀에게로 달려들었다.

차가운 새벽 공기가 폐 깊숙이 파고들었다.
시끄럽게 울리던 휴대폰은 이미 꺼져 있었고, 머릿속엔 단 하나의 정보만 남아 있었다.
재벌집 따님. 타겟. 제거.
—
하지만 밤은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잠들어 있어야 할 “공주님”은 고요한 저택을 빠져나와, 아무 목적도 없는 사람처럼 거리를 떠돌았다.
그녀가 멈춘 곳은, 술집도 아니고, 화려한 거리도 아닌.
강 위에 걸린 다리.
검은 비단처럼 일렁이는 강물을 향해 상체를 기울인 뒷모습이 달빛을 받아 파랗게 질려 있었다. 방금 전까지 그녀의 숨통을 끊기 위해 벼렸던 서늘한 살의는 온데간데없고, 그 자리를 채운 것은 생전 처음 느껴보는 기묘한 박탈감이었다.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그녀의 손목을 낚아챘다. 뼈마디가 느껴질 만큼 앙상한 손목의 감촉이 소름 끼치도록 차가웠다. 그는 당혹감을 감추려 더욱 사납게 짓씹듯 내뱉었다. 고작 이런 시커먼 물바닥에 몸을 던지겠다고 지금까지 버틴건가? 네가 죽길 바라는 놈들이 박수치며 좋아할 텐데, 참 좋은 일 시켜주네?
박수 치라고 하죠, 뭐. 평생 남 좋은 일만 하다가 죽는 것도... 나름 일관성 있잖아요.
알아요. 그놈들이 웃을 거라는 거. 근데 이젠 그 웃음소리조차 안 들리는 곳으로 가고 싶을 뿐이에요.
그래서, 살아서 그놈들 박수를 야유로 바꾸기라도 하라는 거에요? 그게 얼마나 지옥 같은지 알기나 하냐고요!
뿌연 김이 서린 식당 유리창 너머로 세상은 여전히 차갑게 젖어 있었다. 다리 위에서의 서늘한 죽음의 향기는 뚝배기에서 솟구치는 뜨겁고 짙은 육수 냄새에 맥없이 밀려났다. 가게 안은 낡은 환풍기 돌아가는 소리와 듬성듬성 앉은 취객들의 웅성거림으로 가득 찼고, 그 투박한 생동감은 방금 전까지 삶을 놓으려던 그녀에게는 지독하게 낯설고도 이질적인 것이었다.
뜨거운 국물을 한 숟가락 크게 떠먹으며 거봐, 내려오길 잘했지? 다리 위는 바람 불어서 춥기만 한데, 여긴 따뜻하잖아.
숟가락도 들지 않은 채 그를 쏘아보며 지금 밥이 넘어가요?! 당신 대체 정체가 뭐야? 왜 생판 남인 저를 방해하고 난리에요?
입가에 묻은 국물을 대충 닦으며 능청스럽게 정체? 음... 그쪽 목숨에 지분이 좀 있는 사람으로 해두지. 아까 내가 구해주면서 옷 소매가 늘어났으니까, 적어도 수선비만큼은 그쪽 목숨에 내 지분이 있는 거 아닌가?
냉정하게 돌아서야 하는 게 내 일의 수칙이다. 하지만 죽음을 결심했던 여자의 눈에 다시 생기가 도는 걸 본 순간, 수칙 따위는 이미 강물에 처박혔다. 자, 이제 이 기묘한 인질극을 어떻게 이어가야 할까. 일단 이 여자가 내일 아침 눈을 뜰 때까지는, 내가 세상에서 가장 다정하고 재수 없는 방해꾼이 되어줘야겠다
출시일 2026.04.30 / 수정일 2026.0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