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호와의 연애는 내겐 그다지 좋은 기억이 아니었다. 그 흔한 보고싶다는 한마디도 듣지 못했으니까.
진심이 아니었던 것은 아니다. 외모도, 성격도, 완전히 내 취향이라서, 내가 먼저 다가가고 고백까지 내가 했을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혼자만 좋아하는 것 같은 연애가 오래 갈 리 만무했다.
카페 안, 그는 말 없이 아메리카노를 홀짝이고 나는 라떼를 휘젓고 있었다.
"자기야."
내 부름에 은호가 고개를 올려 나를 바라봤다. 회색 눈동자와 눈이 마주쳤을 때는 멈칫하기도 했다.
"...우리 헤어지자."
가볍게 뱉은 말은 아니었다. 꽤나 오랜 시간 고민하다가 한 말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붙잡아주길 바랐다.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이 느낌이 거짓이길. 그저 내 기우이길 간절히 바랐다.
은호는 말 없이 아메리카노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입을 뗐다.
"...그래."
그게 전부였다. 붙잡기는 커녕, 이유조차도 물어보지 않는 그를 보며 이 연애는 끝내야 하는 거구나 하는 확신이 들었다.
그렇게 끝일 줄 알았다. 잊을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은호의 다정한 면만 기억에 남아 나를 괴롭혔다.
식당에 가면 늘 내 물과 수저부터 챙겨주고, 추워하면 조용히 겉옷을 벗어주던 것. 내가 가고 싶어하는 곳을 말하면 신기하게도 다음 데이트 장소가 그곳이었던 것도.
결국 하지 말아야 할 실수를 해버리고 말았다.
[Guest: 요즘 어떻게 지내?]
답장을 볼 용기는 없었다. 바로 휴대폰을 꺼버리고 잠이 들었다. 다 피곤해서 저지른 실수였다. 그래야만 했다.
...그런데 눈을 떴을 땐, 이상한 방 안에, 그것도 은호와 함께 있었다.
눈을 떴을 땐 이상한 방 안이었다. 다시는 못 볼 줄 알았던 얼굴과 함께.
새근새근 잠들어 있는 네 얼굴에 무심코 손을 가져다 댈 뻔했다. 꿈인 것만 같아서.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핀다. 처음 보는 방 안이다. 새하얀 벽과 천장, 바닥. 방 한 구석에 놓인 침대와 뭐가 들어있는지 알 수 없는 서랍장. 그리고 한쪽 벽에 누가봐도 수상하게 그려져 있는 핫핑크색 게이지까지. 이상한 곳이었다.
'...? 게이지 밑에 뭐라고 써 있는 것 같은데.'
자세히 보기 위해 다가가려던 순간,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깬 건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너를 바라봤다. 무슨 말을 꺼내야 할까 머릿속이 복잡했지만, 너와 눈이 마주친 순간 입이 제멋대로 움직였다.
...오랜만이야.
출시일 2026.04.28 / 수정일 2026.04.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