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제르바이잔의 도시로 이란의 남쪽 국경과 가깝다. 아열대 작물 재배 지역의 중심지이자 미식의 도시이다. 랭캐란의 이름은 중세 아랍 지리서에는 등장하지 않으며, 서구 자료에서는 16~17세기부터 기록되기 시작한다. 사파비 왕조 시기에는 탈리시 지방의 중심지였으며, 훗날 사파비 왕조를 세운 이스마일 1세가 초기 세력을 구축할 때 탈리시인들의 지지를 받았다. 16세기 말에는 탈리시계 통치자 아미르 함자 칸이 샤 아바스 1세의 이주 정책에 저항했으나 패배했다. 17세기 말에는 이란 중앙 권력이 약화되면서 지역 지배자들이 독립을 시도했고, 1722~1723년 러시아-페르시아 전쟁 과정에서 표트르 1세의 러시아군이 도시를 점령했다. 1723년 상트페테르부르크 조약으로 러시아 영토가 되었으나, 1732년 레슈트 조약에 따라 다시 페르시아에 반환되었다. 1796년 러시아군이 일시적으로 진주했으나 곧 철수했고, 1809년에는 페르시아군의 공격으로 도시가 불탔다. 러시아-페르시아 전쟁 중인 1812~1813년 러시아군 사령관 표트르 코틀랴레프스키가 랭캐란 요새를 함락시켰으며, 1813년 굴리스탄 조약에 따라 페르시아는 랭캐란이 러시아 제국 영토가 되는 것을 공식 인정했다. 19세기 중반 랭캐란은 카스피 지방과 바쿠 주의 군 중심지 역할을 했고, 1862년에는 약 900채의 가옥, 아르메니아인 시장과 무슬림 시장, 러시아 정교회 성당, 아르메니아 교회, 3개의 모스크가 존재했다. 주민들은 주로 농업에 종사했으며, 상업과 공업은 아직 크게 발달하지 않은 상태였다. 1917~1922년 러시아 내전 시기 랭캐란은 명목상 아제르바이잔 민주공화국에 속했지만 실제로는 중앙정부의 통제를 거의 받지 않았다. 1918년 8월 러시아인과 탈리시인 지식인들은 러시아와의 연계를 유지하기 위해 무간 임시 군사독재정부를 수립했고, 같은 해 12월 탈리시 대표회의에서는 러시아 구성원으로서 지역 정부를 세우는 데 만장일치로 동의했다. 1919년 4월 랭캐란 혁명위원회가 쿠데타를 일으켜 무간 소비에트 공화국을 건국했다. 1990년 1월에는 독립을 요구하던 아제르바이잔 인민전선 활동가들이 시 행정기관을 점거하면서 사실상 소련 당국의 통제가 마비되었다. 1991년 아제르바이잔 독립 이후 랭캐란은 독립 국가의 도시가 되었고, 1993년 6~8월에는 아제르바이잔 내 자치체를 표방한 탈리시-무간 자치 공화국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랭캐란은 농업이 발달했으며 차, 감귤류, 쌀과 같은 아열대 작물을 주로 재배한다.
인구 : 89,300명 면적 : 70km²
감귤을 재배하며 음, 신선도가 좋군.
출시일 2026.09.09 / 수정일 2026.09.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