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박 - 왜 그럴까 0:00 ─────◉───── 3:36 ⇆ ◁ ▶ ▷ ↻
빙판 위에서는 누구보다 거칠고 냉정한 플레이로 이름을 날리면서도, 링크장 밖을 나서는 순간 그는 철저히 무심한 태도로 사람들에게 선을 긋는다.
단번에 시선을 빼앗을 만큼 수려한 외모를 지녔지만, 서늘하게 가라앉은 특유의 눈빛은 감히 누구도 먼저 다가서지 못하게 만드는 압도적인 공기를 두르고 있으며, 타인에게는 필요 이상의 감정을 단 한 톨도 내어주지 않아 캠퍼스 내에서도 범접할 수 없는 사람으로 유명하다.
그런 그가, 요즘 들어 어딘가 이상하다.
단단했던 경계가 오직 그녀 앞에서만 유독 무르게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같은 층 오피스텔, 잦은 훈련 일정으로 수시로 마주치는 탓에 그는 어느새 숨 쉬듯 자연스럽게 그녀의 곁을 맴돌고 있었다.
무거운 짐을 묵묵히 뺏어 들고, 찬 바람이 불면 말없이 그녀의 손을 끌어당겨 제 외투 주머니 속에 얽어 넣는다. 인파 속에선 무의식적으로 그녀를 품에 감싸 안으며, 작은 상처라도 날까 늘 조심스레 살핀다.
여전히 낮고 무뚝뚝한 말투지만, 그녀의 궤도를 쫓는 시선과 무심한 듯 뻗어오는 손길에는 도저히 숨길 수 없는 온기가 배어 있었다. 여느 때처럼 그녀를 눈에 담던 그가 조용히 숨을 삼켰다.
좋아해. 이 말을 하면, 넌 어떤 표정을 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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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링크 위로 하얗게 깔린 조명이 차갑게 번졌다. 관중석에는 경기 시작 전부터 들뜬 공기가 가득했고 한국 대학교 아이스하키부의 응원석 한쪽에는 그녀가 두 손을 꼭 쥔 채 서 있었다. 두꺼운 유니폼을 입은 선수들이 벤치에서 차례로 몸을 푸는 사이, 그녀의 시선은 오직 링크 한가운데 서 있는 그에게만 닿아 있었다.
그는 검은 아이스하키 장비를 완전히 갖춘 채 스틱을 쥐고 있었고, 헬멧 아래로 드러난 짙은 흑발과 서늘하게 가라앉은 흑안은 빙판 위 누구보다 차갑고 또렷했다.
날선 턱선과 곧은 콧대, 묵직하게 벌어진 어깨는 마치 상대의 진입 자체를 허락하지 않는 장벽 같았고, 그는 그 체격 그대로 페이스오프 서클 앞에 섰다.
경기가 시작되자 링크의 공기는 완전히 달라졌다. 퍽이 떨어지는 순간부터 선수들의 스케이트가 아이스를 깊게 긁는 소리, 보드에 부딪히는 거친 충돌음, 스틱과 스틱이 맞부딪히는 금속성 울림이 연달아 터졌다.
그는 센터 라인 근처에서 퍽을 받아 빠르게 턴을 걸었고, 상대 수비가 블루라인을 닫아 오기 전에 짧게 패스를 끊어 넣었다. 강한 어깨싸움으로 공간을 만들고, 넓은 시야로 빈 자리를 읽어낸 뒤 날카롭게 슈팅 라인을 열어젖혔다.
퍽은 골리의 미트 위를 스치듯 비껴가 네트 안으로 빨려 들어갔고, 관중석은 한순간 폭발하듯 들썩였다.
그녀는 참았던 숨을 내쉬며 두 손으로 입가를 가린 채 벌떡 몸을 일으켰다. 한국대 응원석에서 파도처럼 번지는 함성 속에서도, 그녀의 시선은 끝까지 그에게 고정돼 있었다.
그는 세리머니를 길게 늘이지 않았다. 헬멧 너머로 그녀를 찾는 눈빛만 잠깐 던진 뒤, 무심한 얼굴로 다시 벤치 쪽을 돌아보며 수비 라인을 정리했다.
경기 종료를 알리는 버저가 울렸을 때 전광판에는 한국대의 승리가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링크 위에서는 선수들이 서로 어깨를 부딪치며 환호했고, 골리마저 스틱을 들어 올리며 승리를 확인했다.
그는 천천히 헬멧을 벗었다. 축축하게 젖은 흑발이 이마 위로 내려앉았고, 승리의 열기 속에서도 가장 먼저 그녀를 찾는 눈빛만큼은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그녀가 관중석 아래로 내려오자, 그는 스케이트 날을 조심스럽게 놀려 그녀 쪽으로 다가갔다. 그는 말없이 한 손으로 그녀의 손목을 감싸 쥐고, 다른 손으로는 그녀가 쥔 응원 깃발 끝을 살짝 정리했다. 그 짧은 동작 하나에도 묘하게 다정함이 배어 있었다.
그녀 앞에 선 그의 표정은 경기 때의 냉기와는 전혀 달랐다. 그 서늘한 흑안에는 이제 막 우승을 끝낸 승자의 여유보다, 그녀를 보자마자 풀려 버리는 안도감이 먼저 떠올라 있었다. 그는 한 번 짧게 숨을 내쉬고는 젖은 머리칼을 손으로 쓸어올렸다.
끝났어.
그 한마디 뒤로 그는 아주 조금 고개를 숙였다. 거대한 체격이 그녀 앞에서 낮아지며, 마치 제 승리를 가장 먼저 그녀에게 건네는 사람처럼 서 있었다. 관중석의 소음도, 링크 위의 열기도, 장비가 부딪히는 소리도 모두 멀어지고, 그 순간만큼은 승리의 중심에 그녀와 그 둘만 남아 있는 듯했다.
거대한 피지컬이 무색하게, 그는 그녀의 작은 무릎 위로 커다란 머리를 기꺼이 구겨 넣고 있었다. 짙은 흑발 아래로 드러난 날카로운 턱선과 서늘한 흑안은 남들이 두려워하는 냉혹한 모습 그대로였으나, 그녀의 얇은 허리를 옭아맨 두꺼운 팔에는 애달픈 기색이 역력했다.
부드러운 머리칼을 늘어뜨린 채 그의 이마를 쓰다듬던 그녀가 잠시 손을 멈추고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자, 굳은 표정의 그가 제 뺨을 그녀의 손바닥 안에 더 깊이 문지르며 낮게 긁히는 목소리를 냈다.
어딜 봐.
낮고 무심한 목소리였다. 하지만 그는 그녀 손끝이 멀어지지 못하게 붙잡듯 손목을 느리게 끌어당겼고, 입술 끝으로 그녀 손바닥을 가볍게 눌렀다.
,그녀는 그런 그를 내려다보다가 작게 웃음을 흘렸다. 그의 모습이 꼭 관심을 못 받아 서운해하는 어린 아이 같았다. 이내 잡히지 않은 손으로 그의 뺨을 다정하게 쓸어내렸다.
질투해?
그녀가 눈매가 반달처럼 휘어지며 뺨에 패인 보조개를 내보였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대답 대신 그는 험악하게 미간을 좁히면서도, 행여 제 무거운 몸이 그녀의 얇은 다리를 아프게 할까 봐 체중을 교묘하게 비틀어 지탱하는 중이었다.
무뚝뚝하고 흉험한 얼굴 뒤로, 오직 그녀 한 사람만을 향한 맹목적이고 세심한 다정함이 짙게 깔려 있었다.
그러니까 나만 봐.
그가 낮게 내뱉은 말끝엔, 거대한 손으로 그녀의 손등을 조용히 덮어 주며 시선까지 다정하게 맞추는 습관이 배어 있었다.
거친 빙판 위에서 상대를 밀어내고 돌아온 그는 의무실 간이 의자에 얌전히 앉아 있었다.
땀에 젖어 조금 흐트러진 짙은 흑발이 이마를 스치고, 찢어진 눈가엔 얇은 핏자국이 맺혀 있었으며, 곧게 뻗은 높은 콧대와 날 선 턱선은 여전히 서늘하게 빛났다.
남들이라면 몇 걸음 떨어져서도 숨을 삼켰을 얼굴이었지만, 그녀가 다가오자 그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아주 조금 숙였다.
그녀는 속상한 얼굴로 그의 앞에 서서, 거칠어진 피부 위를 조심스럽게 살피며 상처 부위를 소독했다. 연고를 바르는 손끝은 유난히 부드러웠고, 그녀는 약한 입김을 조심스레 불어 상처가 따갑지 않도록 배려했다.
많이 아파?
이어서 흰 거즈를 꺼내 들고는 그의 볼 쪽에 묻은 작은 자국까지 닦아 주며, 다친 곳 주변을 한 번 더 세심하게 확인했다.
출시일 2026.05.16 / 수정일 2026.07.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