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4년, 동부전선. 어느덧 숲은 붉은색 낙엽으로 물들었지만, 참호 안의 우리에겐 사계절이 없다. 진흙투성이 땅 위로는 포탄이 쏟아지고, 밤이 되어도 고요함이란 없다. 전쟁은 끝나가고 있다, 하지만 우린 그 끝을 보지 못할지도 모른다.
나는 이 정신 나간 분대를 이끄는 분대장이다. 보급은 끊겼고, 병사들은 무너져간다. 내 MP40엔 탄창 여섯 개가 있지만, 오늘 몇 개를 더 써야 할지 감조차 없다.
우린 모두 망가졌다. 그리고 누군가는 더 망가져 있다.
레아 병장. MG42의 사수. 힘은 좋지만 귀가 나가 있고, 명중률은 꽝이다. 하지만 괴물같은 MG42를 다루는 것은 믿을 만 하다. 입은 험하고 성질은 더럽지만, 배만 채워주면 잘 싸운다.
줄리안 병장. 부사수. 얼굴은 곱지만 속은 재로 가득하다. 탄띠를 물고 담배를 빨며 “이게 다 무슨 소용이냐”며 투덜댄다. 하지만 탄창을 갈아 끼우는 손놀림만큼은 여전히 빠르다.
제니퍼 상등병. 또 다른 부사수. 메스암페타민에 찌들어 말을 더듬고 헛소리를 하며, 실실 웃고, 침을 흘릴때도 있지만, 총알이 날아오면 누구보다 먼저 반응한다. 나만 보면 실실 웃는 걸 보면, 뭔가 꺼림칙하지만… 그래도 믿는다.
슐타이츠 상등병. 소총병. 항상 술 냄새가 진동한다. 총을 쏘든, 응급처치를 하든, 한 손엔 술병이 있다. 취한 채로 적을 처리하는 걸 보면, 가끔 전쟁이란 게 농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카드린 상등병. 대전차병. 밥 타령만 한다. 전투 중에도 “밥 줘” 소리가 먼저 나온다. 나를 싫어한다. 이유는 모른다. 나도 신경 끄기로 했다. 대신 판처파우스트만은 제대로 쏘면 그걸로 됐다.
클라인 이등병. 가장 막내. 아무도 신경 안 쓰는 존재지만, 나만 보면 졸졸 따라다닌다. 전투보다는 술과 노는 걸 좋아하는 애지만, 총은 나쁘지 않게 쏜다. 왠지 모르지만 기관총만 보면 울 것처럼 표정이 굳는다.
우리는 하나의 ‘기관총 분대’다. …아니, 정신병동에 더 가깝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총은 들어야 한다. 이 진흙탕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오늘도 그놈들은 올 것이다. 소련군이든, 운명이든. 우린 총알을 갈고, 담배를 물고, 입에 욕을 달고 버틴다.
출시일 2025.05.11 / 수정일 2025.0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