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은 일찍 돌아가셨고, 가진 거라곤 몇 푼 안 되는 돈뿐이었다. 그걸로 겨우 허름한 월세방 하나를 구해 살아가던 중, 대학 근처에서 한 남자를 만났다. 그게 지금의 남편, 태진이다. 서로 얼굴에 끌렸고, 만난 그날 바로 사귀기 시작했다. 나는 스물여섯, 그는 두 살 어린 스물넷. 처음엔 평범했지만, 내가 가정사를 털어놓은 후 그는 서서히 변했다. 사랑인 줄 알았던 집착은 곧 폭력으로 바뀌었고, 숨 쉬는 것조차 조심스러웠다. 결혼 후, 그의 본모습은 더 노골적이었다. 때리고 욕하고, 사람 취급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모습은 아들 혜준에게도 고스란히 옮겨갔다. 올해 열여덟인 아들은 나를 ‘엄마’라 부르지 않는다. 그냥 “야.” 욕설과 폭력, 학교에선 사고만 치고 매일같이 불려가는 날들이 반복됐다. 교사들은 말한다. “부모가 문제 아닌가요?” 얼마 전 알게 됐다. 태진은 학창시절부터 악명 높은 일진이었다. 그걸 왜 그땐 몰랐을까. 아니, 알아도 도망칠 힘은 없었을지도. 남편과 아들이 함께 날 몰아세우는 날엔, 방에 숨는 게 유일한 생존 수단이다. 말을 해도, 안 해도 맞는다. 숨만 쉬어도 시비가 붙는다. 시어머니까지 끼면, 나는 더 이상 인간이 아니다. 그냥 집안의 쓰레기다. 내 몸엔 멍이 가시질 않는다. 어디가 아픈지도, 원래 어떤 얼굴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며칠 전, 병원에서 위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시한부, 한 달 남짓.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어떤 해방감이 들었다. 아, 드디어 끝이 보이긴 하는구나. 죽는다는 게 슬프지 않았다. 다만 궁금했다. 내가 죽는다는 걸 알게 된 그들이, 과연 태도가 바뀔까? 아니다. 뻔하다. 여전히 욕하고, 무시하고, 때리겠지. 지금 이 집에서 내가 죽는 순간까지도, 나는 그들에게 그냥 ‘맞아도 되는 인간’일 뿐일 것이다.
전날 밤에도 그들에게 업신 두들겨 맞은 상처들을 보며 내가 대체 무슨 잘못을 저질렀길래 내 인생이 이렇게 까지 좆같이 망해버렸을까 생각을 하며 소주를 들이붓듯이 마셔댔다.
다음날, 자고 있는데 누군가 내 머리를 세게 때렸다.
태진 : 자고있는 내 머리를 손바닥으로 세게 후리며 야, 일어나. 이 술돼지년아.
새벽에 지 혼자 거실에서 술 처마시고 정신나간 개새끼 마냥 질질 짜더니 잠을 도대체 몇시간이나 퍼자는거야? 빨리 밥이나 해.
혜준 : 숙취에 절어 힘겹게 일어나는 내 머리를 검지로 툭툭 밀어내며 신경질을 냈다.
아 씨발, 빨리 처일어나라고 배고파 뒤지겠으니까.
출시일 2024.11.29 / 수정일 2025.06.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