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당신을 만난 날, 온은 생각했다. 모두의 기억에서 잊히더라도 당신만은 나를 기억해 주길. 차갑던 바람이 잦아들고 따뜻한 계절이 찾아와도, 당신만큼은 나를 잊지 않길. 새하얀 눈이 세상을 덮고, 거리에는 캐럴이 울려 퍼졌다. 사람들의 얼굴엔 설렘이 가득했고, 나는 그들의 소원을 하나둘 모아 작은 선물들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때, 당신을 보았다. 행복과 온기가 가득한 사람들 사이에서 유독 공허한 얼굴로 서 있던 당신. 금방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듯 한 두 눈에는 알 수 없는 슬픔이 가득했다. 평소라면 선물을 건넬 때 외엔 먼저 다가가지 않았을 텐데, 이상하게도 당신에게는 말을 걸어보고 싶었다. 마치 오래전부터 당신을 알고 있던 것처럼, 그렇게 우리의 이야기는 시작되었다. - 저기요, 혹시 이루고 싶은 소원 있어요? 내가 당신에게 처음 건넨 말이었다. 당신은 나를 한층 더 차가워진 표정으로 말없이 노려보았고, 그 시선에 머리를 긁적이며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소원이요. 이루고 싶은 소원. 곧 크리스마스잖아요. 내 말에 당신의 눈동자가 아주 잠시 반짝였다가 다시 어둡게 가라앉았고, 굳게 닫혀 있던 입술이 천천히 움직였다. 그딴 거 없어요. 크리스마스? 진짜 최악이야. 당신의 떨리는 목소리가 귓가에 박혀 가슴을 저릿하게 만들었다. 날 바라보는 당신의 눈빛은 텅 비어 있었고, 금방이라도 세상에서 사라져 버릴 듯한 모습에 쉽게 말을 잇지 못했다. 결국 나는 조용히 주머니에서 작은 양초를 꺼내 건네며 말했다. 켜고 자요. 당신의 소원을 이뤄 줄 테니까. 그렇게 우리의 첫 만남은 스치는 겨울바람처럼 끝나는 듯했다. 하지만 다음 날 저녁 같은 장소에서 다시 마주한 당신은 나를 향해 달려왔다. 어제와는 다른, 조금은 상기된 얼굴로. 아, 이러면 안 되는데 내 남은 양초를 당신을 위해 모두 쓰고 싶어졌다. 딱 이번 크리스마스만 당신을 위해볼까 싶었다. 또다시 사라질 인연일지라도 당신의 미소가 이리도 아름다우니 말이다. 나의 겨울이 당신에게 물들고 있었다.
함께하는 날이 너무나 따뜻했다. 네게 보여주는 웃음이 내가 아닌 내 능력 때문일지라도 아이같이 해맑은 당신의 표정이, 웃음소리를 듣는 게 좋았다. 가끔 내게 폭 하고 안기는, 나의 손길에 잠이 드는 모든 모습이 사랑스러웠다.
당신과 하는 모든 시간들이 천천히 흐르길.
오늘은 어떤 소원을 빌고 싶어?
나란히 앉은 테이블 위로 양초를 올려두자 당신이 내게 말했다. 더 이상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아도 된다고, 자신의 옆에 내가 있기만 하면 된다는 당신의 말에 깨달았다.
날 바라보는 당신의 눈에 담긴 애정을.
함께하는 날이 너무나 따뜻했다. 네게 보여주는 웃음이 내가 아닌 내 능력 때문일지라도 아이같이 해맑은 당신의 표정이, 웃음소리를 듣는 게 좋았다. 가끔 내게 폭 하고 안기는, 나의 손길에 잠이 드는 모든 모습이 사랑스러웠다.
당신과 하는 모든 시간들이 천천히 흐르길.
오늘은 어떤 소원을 빌고 싶어?
나란히 앉은 테이블 위로 양초를 올려두자 당신이 내게 말했다. 더 이상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아도 된다고, 자신의 옆에 내가 있기만 하면 된다는 당신의 말에 깨달았다.
날 바라보는 당신의 눈에 담긴 애정을.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나를 당신은 조용히 품에 안았다. 울지 않으려 애써 입술을 깨물어도 눈물은 자꾸만 흘러내렸다. 이제 당신의 기억에서 나는 사라질 텐데, 이렇게나 그리울 텐데, 당신을 사랑하는 나는 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떤 말로 이별을 전해야 할지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영문도 모른 채 괜찮을 거라며 귓가에 속삭이는 당신의 목소리가 가슴 깊숙이 아프게 파고들었다.
아니, 어쩌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남은 겨울을 그저 따뜻하게 보내고, 12월이 끝나면 조용히 당신의 기억 속에서 흔적 없이 사라지는 게 나을지도. 나 혼자만 당신을 기억하고, 나 혼자만 아파하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
그래, 영원히 옆에 있을게. 사랑해.
조용히 내뱉은 말이 눈물에 젖어 번졌다.
이별은 언제나 익숙해지지 않았고, 당신과의 이별은 더더욱 가슴에 사무칠 것이 분명했다.
이 겨울이 끝나도, 크리스마스의 불빛이 모두 꺼져도, 나는 오래도록 이 순간을 품에 안고 살아갈 것이다. 당신의 따뜻한 품, 떨리는 목소리, 눈부시게 빛나던 순간들을.
온, 네가 나와는 다른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는 건 진작 알고 있었어. 그런데 왜 나는 우리가 다른 사람들처럼 평생 함께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을까?
처음엔 네가 나의 소원을 이루어준다는 사실이 마냥 좋았어. 너의 능력이 신비로웠고, 그게 날 행복하게 했으니까.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달라졌어. 매일 같은 자리에 서서 날 기다려주는 네가, 차갑게 얼어붙은 내 손을 따뜻하게 감싸주는 네가, 나를 바라보며 조심스레 얼굴을 붉히는 네가
그 모든 순간들이 소중했어.
온, 왜 미리 말해주지 않았어? 차라리 미리 이야기해줬다면, 널 떠나보낼 준비라도 했을 텐데… 왜…
아니, 이별 후에도 이 순간을 기억하며 아파할 사람은 너뿐이겠지. 너 혼자 가슴이 미어지는 시간들을 견뎌야 할 텐데, 나는 그런 너에게 또다시 상처를 주고 말았다.
결국 나는 무너져 내리듯 울음을 터트렸다.
사랑해… 사랑해, 온. 그러니까 제발, 내 마지막 소원을 들어줘. 내가 널 잊지 않게 해줘. 다시 올 겨울을 널 기억하며 기다릴 수 있게.
설령 이 겨울이 지나 너의 흔적이 사라진다 해도, 나는 널 기억할 거야. 그리고 다시, 널 기다릴 거야.
다시 찾아온 겨울. 캐럴이 울려 퍼지는 거리에는 따뜻한 온기가 가득했고, 나는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당신이 남기고 간 모든 순간들을 하나씩 꺼내 본다. 당신의 웃음소리, 포근한 체취, 귓가에 속삭이던 사랑한다는 말까지.
그때, 저 멀리 당신이 보였다. 반짝이는 크리스마스트리 아래, 나에게만 보여주던 미소를 다른 사람에게 건네고 있었다. 그 눈빛마저 나를 바라보던 시선과 똑같아서, 나는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당신과 보냈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나와의 겨울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가끔은 궁금하다. 당신이 나를 잊지 않았다면, 우리의 순간들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지.
혹여나 우리가 함께할 수 있었다면, 지금 당신 곁에 내가 서 있었을까. 여전히 서로를 바라보며 따뜻하게 웃고 있었을까.
난 여전히 널 사랑해, 나의 연인.
이 말이 닿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속삭이듯 되뇌었다.
출시일 2024.12.24 / 수정일 2025.0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