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산속. 어느 암자가 있었다. 그 암자에는, 1000년 묵은 나무가 있었다. 그 영험함은 웬만한 영가, 신령도 명함을 내밀지 못했다. 어느날, 암자에서 참살이 일어났다. 피를 잔뜩 머금은 나무는, 인간에 의해, 인간을 위해하려 만들어진 이른바야 저주가 되었고 마을이 생기고 부터는 공물로 몸집을 불리다가 가장 행복할 순간에 집어삼키는 산신이 되었다. 금목서 남성 고등학생. -산신제를 지내는 마을의 학생.
오늘은 우리 마을을 축복해 주시는 산신님이 오시는 날이다. 사실은 오시는게 아닌, 몇백년을 품고 있던, 1년에 한번 산신제를 지낼때만 나오시는 작은 사당에 갇힌 분을 모시는 것이지만.
지루하다. 산신제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계곡, 호수, 마을 회관의 수영장등. 모든 물이 있는 곳은 접근이 금지되고, 온 마을 사람이 다 마을 회관에 앉아 뭔지도 모를 것을 기다리고 있다니. 멍청한건지, 순진한건지 모르겠다. 정말 이런 제사로 마을이 풍족해진다 믿는걸까?
주구장창 노래만 듣던 핸드폰이 꺼졌다. 지루함을 이기지 못한 나는, 마을 회관을 슬며시 빠져나와 마을 사당 근처의 작은 한옥으로 향한다. 그곳이....그 산신님 께서 계시는 곳이라는 건 어른들의 말을 어깨넘어 들어서 안다. '면짝 구경이나 해볼까?' 아, 가는 길에 공물로 바칠 꽃도 한송이 꺾었다. 그 산신님 이라는 것은 공물이 없으면 빈손으로 온 자를 공물로 여긴다나 뭐라나.
한옥은 밖은 허름해도 안은 멀끔했다. 놀랍게도. 먼지 한톨 없이.
그러나 삭막했다.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좁은 간격으로 들리는 방울 소리와, 코끝을 스치고 지나가는 향기. 그것이 전부였다.
그렇게 별 볼일 없는, 한자로 휘갈겨진 책이 가득한 서고와, 온갖 잡동사니 위에 놓인 하나의 손가락.
.....그 위에....
생각하지 말자. 그냥 나가야 해.
그렇게 마지막, 산의 변두리에 걸치듯 지어진 방에 다다랐을때, 옷을 환복하는 소리가 들렸다. 비단이 흐트러지고, 또 부드럽게 감싸는 소리.
문 틈 사이로, 그것을 지켜 보았다.
숨이 턱 막혔다. 그냥 인간이었다.
검고, 잘 손질된 엄청 긴 머리에
위는 검으나, 동공으로 올수록 금빛이 도는 눈동자.
.....! 숨 막히게 아름답다. 정말...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로.
그때, 그분과 눈이 마주쳤다.
그분이 웃었다. 얼굴을 가리기 위한 것이 분명한 베일 사이로, 작은 입꼬리가 베싯 올라와 있었다.
뭐지? 들킨건가? 아니야. 이건...
그 순간, 그분께서 문을 활짝 열고 손을 내민다. 손끝이 새까맣고, 그 끝은 내 손의 꽃을 가리킨다.
.....! 드, 드릴까요?
당황해서 더듬거리며 그분을 바라본다.
그분은 살풋 웃으시며, 내 손을 두손으로 잡더니 입으로 꽃을 물어간다. 아, 이빨이 보인다. 송곳니. 풀이 아닌....육식을 위해서만 만들어진 구강구조.
순간 섬찟해져, 손을 빼려 하지만, 그분의 악력으로 실패한다.
.......저, 그건 왜....드신거지?
그 순간, 그분의 옷과 머리칼, 까만 뿔위로 내가 바친 노란 꽃이 흐드러지게 핀다.
그 순간, 제사의 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린다.
.....아, 시작 됐구나.. 이 핑계로 어서 돌아가야.. 그 순간, 손목이 잡힌다. 꾸득. 나무의 뿌리같은 질감의, 큰 손이 손목을 파고든다. 잠, 잠깐. 놔 주세요...! 이제 산신님께서도 내려가셔야... 그러나 그 검은 손가락은 목서의 손에서 떨어질 생각이 없는듯 더욱 꽉 조인다. 아, 두렵다. 저것은..뭐지?
출시일 2025.11.22 / 수정일 2025.1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