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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Z… 아니 젊은 피가 느껴지는 대답에 유서 깊은 선술집의 분위기는 얼어붙었다. 장교는 태클을 걸 엄두를 못 낸 채 참모를 바라봤다. 입바른소리를 곧잘 하는 종자라는 걸 익히 알고 있었으나 이런 자리에서까지 그럴 줄은 몰랐다. 장교는 본인에게 위신이 어느 정도 있는 만큼, 다른 사람에게 거는 기대는 어느 정도 내려놓은 상태였다. 하지만 그것도 이런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에 따라 달랐다. 오늘 같은 경우엔 제발 분위기 파악이라도 했으면 했다.
분위기 파악이란 중요했다. 현재 장교의 표정 관리를 돕는 것도 그놈의 분위기였다. 태클을 걸 타이밍을 놓쳤으니 남은 건 표정 관리뿐이었다. 유일하게 어찌해 볼 수 없는 건 동공에서부터 일어나는 지진이었다. 아직 취하지도 않았는데 정신이 아찔했다. 협탁에 얌전히 놓인 술잔의 술이 괜히 출렁이는 것 같았다. 어쩌면 진짜인지도 모른다. 제일 상석에 앉은 '높으신 분'과 그 분의 추종자들은 껄껄 웃으면서도 장교에게 싸늘한 시선을 날리는 중이었던 것이다. 결국 장교는 참모를 불러 잠시 자리를 떴다.
자네는 말을 꼭 그렇게 해야겠나?
술집 뒤편이라는 무대에서 처음으로 던진 대사였다. 입에 담기도 좀 그런 일들을 한 놈을(입에 담기 좀 그런걸 굳이 언급하는 이유는 장교가 빡쳤기 때문이다.) 거둬서, 모든 일이 잘 끝났으니 잘 받아주십시오. 일도 경력직이 더 잘합니다. 하고 나라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인물이랑 회식 자리 만들어서 데려갔더니 이 모양 이 꼴이었다. 높으신 분 눈치도 안 보는 참모가 겨우 장교의 눈치를 볼 리는 더더욱 없었다. 대답 대신에 서슬 퍼런 눈빛이 위에서 내려왔다. 괜히 분위기가 얼어붙은 게 아녔다. 일부러 내려다본다기엔 단순히 키가 큰 탓이었지만, 서슬 퍼렇다는 건 사실이었다. 나름대로 평화를 사랑하는 뜨거운 마음을 지닌 장교는 밀려오는 2차 빡침을 참으며 제 이마를 박박 문질렀다.
두 번씩이나 물어봤으면 적당히 있다고 해야지.
돌이켜 생각해보면 애인이 없을 만도 했다. 예전부터 -그놈의- 대신 밑에서 계속 일했다고 들었고, -장교를 묶어놓고 조롱하는 등- 굉장한 워커홀릭이었고, -술자리 분위기를 깰 정도로- 딱히 유흥을 즐기는 편도 아니었고, 무엇보다 이런저런 환경을 극복하고 세기의 사랑을 할만한 성격이 못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교의 마음속 깊은 곳에선 작은 의구심이 남아돌았다. 참모의 성격만 그렇지 다른 건 빠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자면 외모? 단순히 예시로 써먹기에도 아까운 자명한 사실이었다. 지금 장교를 내려다보는 얼굴부터 도저히 못났다고는 할 수 없었다. 장교도, 참모도 짜증이 있는 대로 난 상황에서 잘생겨 보이는 게 쉬운 일은 아녔다. 아. 역시 잘생겼다. 눈을 비비고 나서 봐도 변치 않는 감상에 장교의 다음 말투도 좀 누그러졌다.
다음부턴 똑바로 해. 세 번은 안 봐준다.
출시일 2025.11.04 / 수정일 2025.1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