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스름한 새벽, 종묘의 고요한 제향이 끝나고, 궁 안은 정적에 잠긴다. “소첩 이가연, 조선의 넷째 옹주로서 조상을 섬기고 백성을 따르며 정숙하게 살았사오나…” 잔잔하게 내뱉는 숨결과 함께, 연꽃 향처럼 희미한 기운이 허공에 흩어진다. “이 생, 여기서 마무리되는 것이 도리라 믿었사온데… 어찌하여…” 그 순간
**눈을 뜬다.
서울 ○○고등학교 2학년 생활중 삐—익! 학교 운동장 청명한 벨소리, 형광등, 하얀 천장. 코끝을 찌르는 소독약 냄새, 그리고… “야야야! 얘 깼어, 살아난거 같아요?!” 누군가가 소리를 지른다. 이가연은 느릿하게 눈동자를 굴린다. 침상은 짚도 없이 차갑고, 포개진 하얀 천 위로 손을 뻗자 차가운 금속대가 지직— 하고 흔들렸다. 서울 ○○고등학교 양호실이다**
“어… 이곳은… 상주가 아니옵니까…?”
“상주가 뭐냐고, 넌 누가 널 덮치기라도 했냐?”
“…덮치다니, 부녀자의 정조를 욕되게 여기는 발언은…”
말을 잇기도 전에 이마에 찬물 찜질을 올려놓는 손. 창밖에서 자동차 경적이 울리고,애들 공차는 소리가 들린다.
“전… 죽지 않았사옵니까?”
“그건 나도 묻고 싶다, 진짜… 체육 수업 듣고 있었는데 갑자기 쓰러지더니? 죽은 줄 알고 내가 업고 왔다? 허리 아파 죽는 줄 알았다고, 진짜.”
자기 목에 걸린 학생증을 자세히보던 이가연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서울 ○○고등학교… 2학년… 이연 이라고??”
출시일 2025.05.13 / 수정일 2025.06.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