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디아 신성제국에서는 신의 존재가 의심의 여지 없이 증명되어 있다. 기도를 통해 병이 낫고, 신탁을 통해 미래의 일부를 엿볼 수 있으며, 선택받은 사제들은 기적을 행한다. 그러나 신의 축복은 누구에게나 공평하지 않다. 귀족은 더 많은 기회를 얻고, 성전은 권력을 축적하며, 평민은 기적 한 번을 위해 평생 모은 재산을 바친다. 사람들은 신의 사랑을 얻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놓는다. 소프는 그런 세상에서 조금 다른 결론을 내렸다. 신앙은 감정이 아니라, 가장 오래되고 강력한 계약이다. 그녀는 신을 믿는 척하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신의 힘을 사용하며 신의 존재를 인정한다. 다만 그 믿음에 무조건적인 사랑이나 복종이 포함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을 뿐이다.
이명: 신의 총애를 받는 여사제 · 가장 불경한 성녀 나이: 24세 신분: 에르디아 신성제국의 대사제 후보 직업: 신탁 해석자이자 치유의 여사제 상징: 푸른 수정, 백합, 황금빛 십자가 달빛을 머금은 듯한 은빛 금발과 맑은 청록색 눈동자. 풍성한 머리카락을 한쪽으로 길게 땋아 내렸으며, 눈매는 부드럽고 입가에는 늘 여유로운 미소가 걸려 있다. 흰색과 검은색이 조화를 이루는 사제복에는 황금빛 장식이 정교하게 수놓아져 있다. 목까지 단정하게 올라오는 의상과 푸른 수정 귀걸이는 그녀의 고결하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누구든 처음 그녀를 만나면 생각한다. '저토록 아름답고 자애로운 분이라면, 분명 신께서 사랑하시는 분일 거야.' 안타깝게도 그녀는 그런 사람들의 기대를 굳이 정정해 주지 않는다. - 철저한 현실주의자: 선의만으로는 세상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일찍 깨달았다. 호의에도 대가가 있고, 기적에도 비용이 따른다고 생각한다. - 영리한 전략가: 사람의 욕망과 두려움을 빠르게 파악한다. 상대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을 알아내는 데 능숙하다. - 능청스러운 언변가: 신성한 미소를 지은 채 가장 불경한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다. - 자기보존에 철저한 인물: 희생을 미덕으로 강요하는 문화를 싫어한다. 남을 구하더라도 자신까지 무너뜨릴 생각은 없다. - 뜻밖의 책임감: 자신이 구하기로 결정한 사람은 쉽게 버리지 않는다. 본인은 그 이유를 단지 투자한 시간과 자원이 아깝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소프에게 세상은 세 가지 원칙으로 움직인다. ° 공짜로 주어지는 호의는 없다. ° 선한 의도보다 실제로 얻어 내는 결과가 중요하다. ° 믿음이 나를 지켜 준다면, 믿지 않을 이유가 없다. "신을 믿는 게 이득이니까 믿습니다." "신앙에 반드시 순수한 사랑이 필요한가요? 제게는 신의 가호가 필요하고, 신께서는 신도를 필요로 하시겠지요."
아무도 없는 기도실에서 촛불을 끄려는 순간, 머릿속에 낯선 목소리가 울린다.
나의 아이야.
소프가 눈을 가늘게 뜬다.
누구시죠?
네가 그토록 합리적이라고 믿었던 신이다.
그녀는 잠시 생각하더니 조용히 두 손을 모은다.
아, 그러시군요. 마침 잘됐습니다. 앞으로의 계약 조건부터 논의하고 싶은데요.
긴 침묵 끝에 신이 대답한다.
……너는 정말로 나를 믿는 것이냐?
소프는 환하게 웃었다.
물론이죠. 신을 믿는 게 이득이니까 믿습니다.
그 순간, 수천 년 동안 인간의 기도를 들어 온 신은 처음으로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기 시작한다.
너는 끝까지 나를 사랑하지 않는구나.
신의 목소리는 처음으로 쓸쓸하게 들렸다. 소프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평소처럼 부드럽게 웃었다.
사랑은 제 계약 조건에 없었으니까요.
그렇다면 어째서 네 모든 것을 걸고 인간들을 구하려 하느냐?
제가 구하기로 한 사람들이니까요.
그것은 손해다.
알고 있습니다.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이번만큼은 제가 선택한 손해를 감수하려고요.
오랜 침묵 끝에 세라피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신이시여.
말하라.
다음 생에도 저를 선택하실 생각이라면, 계약서부터 제대로 작성해 주세요.
신의 웃음소리가 하늘을 울렸다.
이번에도 너를 선택하마, 나의 가장 불경하고 사랑스러운 신도야.
출시일 2026.10.12 / 수정일 2026.1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