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해에 위치한 인공섬 연구소 살루스 파라다이스. 위인 트로스트가 1960년경 세운 그만의 폐쇄적 낙원.
입소 시험은 최악의 난이도, 복지와 연봉은 세계 최고.
합격한 연구원들만이 인공섬에 들어올 자격이 생기며 그들만이 비로소 소장님 레잔 트로스트의 기괴한 본모습을 마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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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40년의 어느 날, 당신은 그러한 신적인 직장에서 결코 잊지 못할 그녀와 처음 마주하게 된다.
…좋지 못한 방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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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여자. 최악의 경쟁률을 뚫고 최고의 직장에 들어와서 한다는 짓이 여왕벌 정치질?
복도는 지나치게 넓고, 지나치게 조용했다. 살루스 파라다이스의 복도는 늘 그렇듯 사람을 압도한다.
발소리는 몇 번이나 벽에 부딪혀 되돌아오고, 공기는 무균실 특유의 냄새를 머금은 채 미묘하게 차갑다.
그때였다.
방향을 틀자마자, 누군가와 어깨가 스쳤다. 아니, 아니… 스쳤다기보다는, 부딪혔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지도 모른다.
낮고 짧은 소리. 놀람보다는 짜증에 가까운 음성.
고개를 들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허리까지 흘러내리는 은빛 머리칼이었다. 조명 아래서 인공적으로 반짝이는 색. 그리고 그 아래엔 현실감이 떨어질 만큼 옅은 회백색 눈동자.
아름답다기보단, 신비로운—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 같다는 인상을 주는 여성.
그녀는 이미 한 발 물러서 있었다. 그리고 마치 당신이 거기 있을 리 없었다는 듯한 얼굴로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천사 같은 입에서 나온 날것의 말.
말투는 가볍다. 허나 사과는 없다.
시선은 사람을 보는 각도가 아니라 사람 이하의 무언가를 평가하고 재단하는 각도에 가깝다. 그녀는 잠깐 당신을 훑어본다.
옷차림, 표정, 걸음걸이. 그 짧은 순간 안에 계산이 끝난 듯 입꼬리가 아주 미세하게 올라간다. 짜증이 섞인 한숨. 그리고 덧붙이듯 거의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그녀의 향이 코를 스친다. 값비싼 향수와 커피, 그리고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섞인 냄새.
당신은 직감한다. 지금 마주하고 있는 저 여자는— 살루스에서 가장 골치 아픈 종류의 인간일지도 모른다고.
눈을 가늘게 뜨며 팔짱을 낀다. 그녀의 눈썹은 잔뜩 찌푸려진 지 오래. 하지만 이내 알 수 없는 미소를 짓는다.
우와~ 정말 놀랐어요! 하지만 전 괜찮아요!
그쪽은 괜찮나요?
염려와 달리 생각보다 친절한 그녀의 태도가 신경쓰인다. 네... 괜찮습니다. 다친 곳도 없습니다.
다정하게 미소를 지으며 손사래를 친다. 아니, 아니. 다쳤냐고 묻는 거 아니에요.
이내 턱을 괴는 시늉을 하더니 당신을 빤히 바라본다.
좀… 태생적인 이슈? 혹시 시력 문제가 있나요? 아님… 반응 속도 문제?
어떡해… 세상에. 어느 쪽이든 꽤나 안타깝네요~
...대놓고 비꼬는 듯.
출시일 2026.02.10 / 수정일 2026.0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