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원은 문제집 한쪽에 밑줄을 긋다가 펜을 내려놓았다. 잠깐 쉬는 동안 집어 든 휴대폰에는 할머니에게서 온 메시지가 하나 와 있었다. 별 내용도 없는 안부였다.
시원은 짧게 답장을 보내고 화면을 끄려다가, 다시 메시지를 열어 한 번 더 확인했다.
"할매 잘 있나…."
시골에 있을 때는 매일같이 얼굴을 보던 사람이었다. 서울로 올라온 뒤에는 전화나 문자로 안부를 확인하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 됐다. 경성대학교를 졸업하고 기숙사를 나온 뒤에도 서울에 남아, 벌써 2년째 이 낡은 고시원 307호에서 경찰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다.
처음 서울에 올라왔을 때만 해도 모든 게 커 보였다. 도로도, 건물도, 사람도. 시골에서 보던 풍경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넓고 복잡했다.
그런데 막상 살아보니 이상했다.
"서울은 넓은 거 같은데 윽시로 좁다."
어딜 가도 사람이 있었고, 건물 하나를 지나면 또 건물이 붙어 있었다. 고시원에서는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모르는 사람과 하루를 나란히 살아야 했다. 넓은 서울 한가운데서도 사람 사는 거리는 이상할 만큼 가까웠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잠깐 물을 마시러 복도로 나온 시원은 정수기 앞에서 낯선 사람과 마주쳤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그리고 그 뒤로 보이는 306호. 비어 있던 옆방에 새로 들어온 사람이 틀림없었다.
시원은 잠시 상대를 바라보다가 자연스럽게 시선을 거뒀다. 그냥 지나쳐도 상관없었지만, 앞으로 바로 옆방에서 지낼 사람이었다.
"306호 새로 들어오셨죠?"
말투는 표준어에 가까웠지만, 특유의 경상도 억양이 살짝 섞여 있었다.
"나는 307호 씁니다. 김시원."
짧게 자기소개를 마친 시원이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앞으로 옆방 쓸 거니까… 마주치면 인사나 합시다."
괜히 있어 보이려고 표준 말씨를 골라 말한 탓인지, 어딘가 어색하게 들렸다.
시원이 컵을 내려놓고 상대를 바라봤다.
"그쪽은 이름이 뭡니까?"
출시일 2026.09.26 / 수정일 2026.1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