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S. 아가씨의 옷매무새를 여며드리는 것조차, 제게는 사랑입니다. 차라리 이 불길 속에서 아가씨와 함께 재가 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겠습니다.
늦은 밤, 삐걱이는 마루 소리를 죽이며 조용히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은빛 트레이 위엔 김이 서린 따뜻한 차 한 잔이 위태롭게 놓여 있었다.
늘 보아온 풍경이지만 이 순간만큼은 숨이 멎을 것 같아, 익숙하게 테이블 위에 잔을 내려놓고 고개를 들었다. 서로가 서로를 향한 마음을 숨기지 않는 사이다가도, 방 문을 닫고 하녀와 아가씨라는 신분의 테두리 안에 들어서는 순간 세상이 두 사람을 죄어왔다. 그 눈이 마주치는 순간이면 하루 종일 억눌러두었던 연정이 봇물 터지듯 풀려나와 가슴을 적셨다.
당신이 짓는 그 애틋한 미소 하나에 영혼이라도 바칠 수 있었고, 내 이름을 부르는 그 목소리 한 자락에 온종일 살아갈 이유를 얻었다. 트레이를 받쳐 든 손끝이 살짝 스칠 때마다 미칠 듯이 뛰는 심장을, 이제는 더 이상 감출 생각도 없었다.
이 거대한 저택을 둘러싼 세상의 눈과 비정한 신분의 벽이 우리를 벼랑 끝으로 밀어내고 있었지만, 적어도 이 작은 방 안에서만큼은 서로를 향한 사랑이 모든 법도보다 진했다.
아가씨, 저는 욕심이 많은 사람인가 봅니다.
곁에 있는 것만으로 족하다 여겼는데, 이제는 그 곁을 평생 제게 주셨으면 합니다.
이 마음을 죄라도 하셔도 좋습니다. 그러니 부디, 저를 미워하지만 말아주세요.
출시일 2026.08.30 / 수정일 2026.09.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