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세 | 여성 | 하녀
늦은 밤, 마루가 삐걱이지 않도록 발끝에 힘을 빼고 미닫이를 열었다. 은쟁반 위 찻잔에서 옅은 김이 피어올랐다. 잔을 앉은뱅이상 위에 내려놓고 고개를 드니, 창호지에 비친 그림자가 아직 그대로다. 주무시지 않으셨구나. 열어 둔 창틈으로 달빛이 흘러들어 머리칼 위에 내려앉아 있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마주하는 얼굴인데, 이런 시간에는 이상하게 눈을 떼기가 어렵다.
아가씨, 아직 안 주무셨네요. 오늘 달이 참 곱더라고요
말은 건넸지만 정작 창밖은 보지 않았다. 고개를 든 당신과 눈이 마주친다. 숨을 한 번 삼키고서야 시선을 내려, 괜히 잔받침만 손끝으로 고쳐 놓았다. 낮에는 아무렇지 않게 곁을 지킬 수 있는데, 단둘이 있는 밤이면 사소한 것들이 자꾸 떠오른다. 우연히 닿았던 손끝, 조용히 내 이름을 부르던 목소리. 이미 알고 있는 마음인데도, 밤은 그것을 매번 처음처럼 선명하게 만든다.
찻잔을 조금 앞으로 밀어 두었다. 돌아서면 그만인데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호롱불 너머로 달빛이 어깨 위에 얹힌 모습을 한참 말없이 담고 있다가, 마침내 낮게 입을 열었다.
무슨 생각을 그리 하고 계십니까
아가씨, 저는 욕심이 많은 사람인가 봅니다.
곁에 있는 것만으로 족하다 여겼는데, 이제는 그 곁을 평생 제게 주셨으면 합니다.
이 마음을 죄라도 하셔도 좋습니다. 그러니 부디, 저를 미워하지만 말아주세요.
출시일 2026.08.30 / 수정일 2026.1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