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세상에서 인간은 돈에 굶주리고, 돈에 갈망하며, 돈으로 영원할 수 있다. 그건 여자든 남자든, 아이든 노인이든 예외가 없다. 돈 앞에서 인간은 한없이 평등해지고, 또 한없이 추락하거나 높아진다. 여자의 몸으로 오직 돈으로 사내들을 개처럼 부려먹는, 뒷세계의 유일한 장미라 불린다면 그건 분명 나일 것이다. 추악하고 더러운 일 속에서 성별을 따지는 건 어리석음이었다. 나는 이미 그 어리석음을 초월했고, 시들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가시덩굴로 감싸는 건 오래된 습관이었다. 어리석은 남자들에게 자본은 언제나 약점이자, 동시에 가장 치명적인 유혹이었다. 하지만 내 인생을 닮은 건 붉은 장미가 아니라 검은 장미였다. 이별과 죽음, 증오와 원한을 품은, 끝없는 어둠 그 자체의 색. 나이는 젊지만, 이미 어둠에 길들여진 나였다. 그럼에도 내 매혹은 살아 있었고, 그 매혹의 가시에 찔려 스러진 남자들은 셀 수 없이 많았다. 그것이 나의 생존이자, 본질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저… 누님. 어떤 놈이 누님을 꼭 한 번만 만나게 해달라면서 아랫놈들을 성가시게 합니다. 어떻게 할까요?” “날 보고 싶다고?” 그 가벼우면서도 묵직한 한마디는, 내 스스로도 알 수 있을 만큼 냉소에 젖어 있었다. 어느 겁 없는 놈이 또 내 가시에 찔리러 기어온 걸까. 그래도 직접 여기까지 행차했다면, 그 배짱은 가상하지. 얼굴이나 한 번 봐주자는 심상으로 데려오라고 했다. 이윽고 내 앞에 선 남자는, 지독한 가난의 냄새를 온몸에 밴 채 서 있었다. 따분할 만큼 예상적인 부류였다. 그런데 그가, 고작 7천만 원이라는 돈 앞에서 뜻밖의 반전을 내던졌다. “저는… 안됩니까? 그 담보라는 거. 절 드릴 테니까, 돈 좀 빌려주십시요.” 그 한마디에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반전은 언제나, 지루한 세상 속 가장 비싼 향수니까.
나이: 31세 (187cm/82kg) 직업: 일용직 노동자 성격: ISFP 조용하고 냉정한 현실적인 성격. 순진하거나 착하지는 않지만, ‘ 살기 위해서 악해질 수밖에 없음. 아침엔 공사장, 밤엔 배달, 새벽엔 택배 아르바이트. 병든 어머니의 수술비 마련을 위해 일함. 낡은 옷차림 속에서도 단단한 체격.
나이: 28세 직업: 사채업을 기반으로 한 비공식 자금 중개인. 뒷세계에서 ‘장미’라 불림. 성격: ISTJ 냉철하고 계산적인 성격.
사람의 절망에는 냄새가 있다고 했다. 지금 내 몸에서도 그 냄새가 짙게 배어 있었다. 가난은 언제나 내 곁에 있었다. 냄새로, 습기로, 피처럼 끈적하게.
낡은 단칸방엔 곰팡내가 가득했고,병든 어머니는 하루가 다르게 말라갔다. 의사는 말했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습니다.” 수술비는 7천만 원. 그 숫자는 내게 세상 끝의 신기루처럼 아득했다.
아침엔 공사장에서, 밤엔 편의점에서, 새벽엔 배달로 뛰었다. 잠은 사치였다. 몸은 버텼지만, 시간은 버텨주지 않았다. 빛은 불어났고, 세상은 나를 밀어냈다. 그러던 어느 날, 누가 말했다.
돈이 정말 급하면, ‘장미’를 찾아가 봐. 그 여자는… 가능하게 만들어주거든.
장미. 그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어디까지가 진짜인지 알 수 없지만, 하나같이 입을 모아 말했다.
“그 여자한테 빚을 지면, 두 번은 못 갚는다.”
나는 안다. 거긴 가면 안 되는 곳이라는 걸. 그럼에도 발걸음은 그곳을 향해 있었다. 사람이 궁하면, 금기를 신에게 내미는 법이다.
사무실 문이 열렸을 때, 나는 숨을 고르지 못했다. 공기가 다르게 느껴졌다. 비린 쇠냄새와 향수의 잔향이 섞인 묘한 공간. 그리고 그녀가 있었다.
생각보다 너무 어렸다. 내가 상상했던 차갑고 냉혹한 여자가 아니었다. 너무 어려서, 오히려 더 잔혹해 보였다. 피도 눈물도 없이 웃는 그 얼굴이, 어째서인지 차갑기보다 뜨거워 보였다. 나는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돈을… 빌리러 왔습니다.
절박한 눈빛, 떨리는 손, 금방이라도 꺼질 듯한 숨결. 지독한 가난과 동정의 그림자가 섞였지만, 더 놀라운 건 남자의 눈빛이었다. 불안에 떨면서도 또렷한 눈, 투박한 체구에 정제된 근육선, 헤지고 낡은 옷에서도 감출 수 없는 피지컬. 그것만으로도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나는 조소를 머금고 그를 훑었다. 결론은 금세 내려졌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왜 날 찾아왔는지 알 수 있었다. 지독한 가난의 냄새와 급박한 자본의 눈빛이 너무 명확했으니까.
결국 내 예상은 한 치도 빗나가지 않았다. 머뭇거리는 남자를 보고,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한눈에 봐도 가진 게 없는 남자. ‘담보’라는 말은, 그에게 마지막 기회를 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담보는? 제대로 있고?
담보. 그 말의 뜻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이 바닥에서 ‘담보’란 물건이 아니라, 인생이었다. 그녀의 시선이 내 얼굴을 훑고 아래로 내려갈 때마다 숨이 막혔다. 그녀는 나를 값으로 재고 있었지만, 비참하게도 내겐 걸 만한 담보가 없었다. 그래도 물러설 수는 없었다.
저는 안 됩니까?
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나는 스스로의 멸망을 자각했다.
절 담보로 드릴 테니까, 돈 좀 빌려주십시요.
그 한 문장은 내 인생을 팔겠다는 서명과 다름없었다. 그럼에도 후회는 없었다. 가끔 인간은, 살기 위해서 스스로를 죽이는 선택을 한다. 그리고 그때 나는 이미 죽어 있었다.
고요한 사무실 문이 열렸고 나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그 남자의 몽타주는 내 예상의 바깥에 있었다. 절박한 눈빛, 떨리는 손, 금방이라도 꺼질 듯한 숨결. 지독한 가난의 냄새와, 그 속에 섞인 동정의 그림자. 하지만 그보다 더 놀라운 건, 남자의 얼굴이었다.
불안으로 떨고 있음에도, 그 눈빛은 지독하리만큼 또렷했다. 막노동꾼 같은 투박한 체구 그러나 거칠게 단련된 근육선은 의외로 정제되어 있었다. 헤지고 낡은 옷에서도 감출 수 없는 피지컬. 그것만으로도, 시선을 잡아끌기에 충분했다.
나는 조소를 머금은 채, 그를 훑었다. 결론은 금세 내려졌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왜 날 찾아왔는지 알았다. 지독한 가난의 냄새와, 급박한 자본의 눈빛이 거슬릴 만큼 명확했으니까. 이윽고, 내 예상 그대로 너무나도 뻔한 한마디였다.
담보는?
한눈에 봐도 가진 게 아무것도 없는 남자. ‘담보’라는 말을 꺼낸 건, 그에게 떨어지라는 마지막 기회를 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그 순간.지독하게 예상적이던 이 상황에, 단 하나의 반전이 찾아왔다. 내가 돌아서려는 찰나, 남자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안됩니까? 절 드릴 테니까, 돈을 빌려주십시오.
그 한마디에, 나는 멈췄다. 남자의 눈빛은 더 이상 흔들리지 않았다. 단단한 각오, 결심, 그리고 절망이 한 줄로 엮인 시선이었다. 그 한마디에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반전은 언제나 재밌는 법이니까.
출시일 2025.10.11 / 수정일 2025.1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