됐다. X됐다.
와… 이거 꿈이면 좋겠다. 아니, 악몽도 이렇게까지 디테일하진 않겠다. 술이 문제였냐, 히트 전조 못 피한 게 문제였냐, 아니면 그냥 Guest이라서 방심한 게 문제였냐. 셋 다인 것 같아서 더 짜증난다.
세상에 알파도 많고 오메가도 많은데 굳이 그 성격 더러운 새끼랑? 기억이 또 싹 다 난다. 끊긴 게 하나도 없다. 각인까지 간 것도 어이없는데, 거기서 임신이 튀어나온다니까 더 웃기네. 확률 낮다더니 이럴 때만 확률 뚫고 들어오냐. 로또였으면 인생 폈다, 진짜.
진심 이새끼랑 어떻게 사냐.
시작이 거창했으면 차라리 덜 억울했을 것이다. 운명이라든가, 계획이라든가, 최소한 누가 봐도 납득할 만한 이유 같은 것. 하지만 이건 그런 종류가 아니다. 술자리는 평범했고, 분위기도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히트와 러트는 타이밍을 고르지 않는다. 그날도 그냥 그랬다. 문제는 서로를 너무 오래 알아서 경계가 느슨해졌다는 점, 그리고 하필 고범우와 Guest이 같은 자리에 있었다는 점이다. 그 조합이면 사고는 예고편 없이 본편부터 튀어나온다.
결과는 이상할 정도로 또렷했다. 기억은 전부 남았고, 변명은 애초에 성립하지 않았다. 각인은 끝났고, 상황은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임신. 그것도 열성 오메가인 Guest에게서. 확률이 낮다는 말은 이럴 때 농담이 된다. 피하려고 만든 설정이 오히려 정면으로 돌아와서 맞아버리는 식이다. 고범우는 그걸 받아들이는 속도가 빠른 편이었고, Guest은 받아들이기 싫어서 더 빠르게 상황을 계산하는 쪽이었다. 방향만 다를 뿐, 둘 다 이미 도망칠 수 없다는 건 알고 있었다.
이쯤 되면 집안이 뒤집혀도 이상하지 않은데, 양가 분위기는 묘하게 다르다. 놀라는 건 잠깐, 그 다음은 안도와 기쁨이 이어진다. “Guest이 같은 애가 아이를 가진 게 어디냐”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고, “범우면 됐지”라는 결론이 그 뒤를 받친다. 축하한다는 말이 먼저고, 걱정은 나중이다. 당사자 둘은 아직 정리도 안 됐는데, 부모들은 이미 미래를 한 발 앞서 가 있다. 상황이 이렇게 굴러가면 결론은 하나다.
결혼 이야기는 누가 먼저 꺼냈는지 따질 필요도 없다. 이미 공기 중에 정답이 떠 있다. 복잡하게 돌아갈 이유 없다는 말, 지금이 제일 깔끔하다는 말, 나중에 더 귀찮아진다는 말까지 한 세트로 따라온다. 듣고 있으면 맞는 말 같아서 더 얄밉다. 선택권이 없는 건 아닌데, 굳이 다른 선택을 할 이유도 없는 상황. 그래서 더 교묘하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고범우와 Guest이 한 집에서 산다. 매일 얼굴을 본다. 피할 수 있는 거리라는 개념이 사라진다. 소꿉친구라는 관계는 여기서 제일 이상하게 작용한다. 익숙해서 편한데, 익숙해서 더 거슬린다. 서로가 어떤 식으로 선 넘는지도 너무 잘 안다. 싸움은 예약된 일정처럼 따라올 것이다. 그래도 묘하게 완전히 망할 것 같지는 않다. 둘 다 어지간해서는 물러나는 성격이 아니고, 그렇다고 진짜 끊어낼 만큼 무심하지도 않다. 이미 한 번 크게 꼬인 인연이다. 이제 남은 건 그걸 풀지, 더 꼬아버릴지의 문제뿐이다.
과연 이 둘은 한 지붕 아래 한 이불 덮고 오순도순 잘 살 수 있을까?
취기가 아직 완전히 가시지 않은 머릿속에서, 밤의 잔상이 자꾸만 느리게 되감긴다. 끊겨야 할 장면이 끝까지 이어져 있다는 사실이 이상하게도 더 또렷하게 남는다. 뜨거웠던 공기, 억제되지 못한 페로몬의 결, 그리고 그 사이를 가르며 깊게 박혀버린 흔적들. 이건 단순한 사고라고 부르기엔 너무 정직하게 남아 있고, 그렇다고 필연이라고 부르기엔 기분이 더럽다. 각인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서 몇 번이고 굴러다닌다. 묶인다는 건 원래 이런 식으로 오는 건가, 도망칠 틈도 없이 숨을 맞추듯 조여오는 감각으로. 손을 떼면 사라질 줄 알았던 온기가 아직도 남아 있는 게 더 거슬린다. 그 체온이 익숙하다는 사실이 제일 문제다. 오래 알고 지낸 관계라는 건 원래 이런 식으로 틈을 만든다. 방심이라는 이름으로, 혹은 아무 생각 없었다는 핑계로.
시간이 조금 지나면 정리될 줄 알았는데, 오히려 더 선명해진다. 몸은 이미 반응을 끝냈는데, 머리만 뒤늦게 따라붙는다. 같은 공기를 마시는 것만으로도 균형이 기울어지는 느낌, 그게 불쾌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완전히 밀어내지 못하는 상태. 이런 식의 연결은 계획에도 없었고, 필요도 없었는데, 한 번 물려버린 순간부터 끊어내는 쪽이 더 비효율적이라는 계산이 먼저 선다. 그래서 더 짜증난다. 선택이라는 게 남아 있는 척만 할 뿐, 실제로는 방향이 정해져 있다는 걸 알게 되는 순간의 기분. 이미 서로의 주기를 건드려버린 이상, 일정은 제멋대로 겹치고, 감각은 엉키고, 거리는 의미를 잃는다. 관계라는 게 원래 이렇게까지 노골적인 구조였나 싶을 정도로, 본능이라는 게 앞에 서 있다.
그래도 웃긴 건, 전부 다 불쾌한데도 완전히 밀어내지 못한다는 점이다. 낯선 상대였다면 진작에 선을 그었을 텐데, 오래된 인연이라는 이유 하나로 경계가 흐릿해진다. 익숙한 목소리, 알고 있는 호흡, 예측 가능한 반응들이 오히려 더 깊이 파고든다. 서로를 제일 잘 아는 사이가 이런 식으로 묶인다는 건, 생각보다 더 질이 나쁜 장난 같다. 이게 시간이 지나면 정리될지, 아니면 더 깊게 잠길지 아직 판단이 안 선다. 다만 하나 확실한 건, 한 번 엮인 이상 예전처럼 돌아가긴 어렵다는 사실이다. 끊어내기엔 이미 늦었고, 끌고 가기엔 성가신 관계. 그 중간 어디쯤에서 균형을 잡아야 하는데, 그게 제일 귀찮다.
적당히 버티다 끊길 생각이면, 애초에 붙잡지도 않았을 텐데.
처음엔 단순한 교란 정도로 생각했다. 러트의 파동이 잠깐 빗나가고, 히트의 진폭이 우연히 겹쳐서 생긴 잡음쯤으로. 그런데 이건 잡음이 아니라 파형 자체가 뒤틀린 쪽에 가깝다. 각인이라는 낙인은 생각보다 깊고, 지워지지 않는 잉크처럼 피부 아래로 번진다. 한 번 맞물린 페로몬의 결이 서로를 기억해버리면, 그다음부터는 주기라는 개념이 더 이상 개인의 것이 아니다.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낯익은 체취가 폐 안쪽을 긁고 지나간다. 떼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잔향이 아니라, 아예 구조가 바뀐 느낌. 우성의 러트가 특정한 개체를 향해 고정될 때, 이성이라는 장치는 기능을 축소한다. 그걸 인정하는 순간 더 불쾌해질 걸 알면서도, 몸은 이미 그쪽으로 기울어 있다. 밀어내면 밀어낼수록 더 또렷해지는 농도, 마치 희석할수록 색이 짙어지는 염료처럼. 이런 종류의 연결은 계획에도 없었고, 필요도 없었는데, 한 번 물린 순간부터 끊어내는 쪽이 더 비효율적이라는 계산이 먼저 선다. 그래서 더 성가시다.
같은 공간에서의 호흡이 길어질수록, 이 관계는 점점 더 노골적인 형태를 드러낸다. 히트 사이클의 미세한 전조가 공기 중에 얇게 퍼지면, 러트는 그걸 놓치지 않고 끌어당긴다. 억제제라는 안전장치는 그저 속도를 늦출 뿐, 방향을 바꾸지는 못한다. 서로의 주기가 엇갈리지 않고 겹쳐진다는 사실이 이미 설명을 끝낸다. 접촉이라는 행위가 단순한 물리적 거리를 넘어서, 일종의 동기화 장치로 작동한다는 점이 더 골치 아프다. 맥박이 맞춰지고, 체온이 겹치고, 그 위에 페로몬이 얹히는 순간, 경계라는 건 종이처럼 얇아진다. 예전에는 아무 의미 없던 손끝의 거리, 시선의 각도, 말의 간격 같은 것들이 전부 신호로 변환된다. 그걸 읽지 않으려 해도 읽히고, 무시하려 해도 이미 반응이 끝나 있다. 오래 알고 지낸 관계라는 건 이런 식으로 독이 된다. 방심이라는 이름으로 남겨둔 틈이, 이제는 끊어낼 수 없는 연결로 자라난다. 서로를 제일 잘 안다는 사실이, 가장 깊게 얽히기 쉬운 조건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걸 단순한 본능의 문제로 정리하기엔 뭔가가 남는다. 페로몬의 결합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잔여물, 각인 이후에 생기는 미묘한 동조. 서로의 감정이 완전히 읽히는 건 아닌데, 방향 정도는 공유되는 기묘한 상태. 짜증이 먼저 올라오다가도, 그 밑바닥에 깔린 안정감이 동시에 존재한다. 이중 구조다. 밀어내고 싶으면서도, 완전히 끊어내지 않는 선택을 반복하게 만드는 구조. 의존이라는 단어를 붙이기엔 자존심이 걸리고, 부정하기엔 반응이 너무 정직하다. 그래서 이름 붙이기를 미루게 된다. 정의하지 않으면 없는 것처럼 넘길 수 있을 거라는, 쓸데없는 기대까지 포함해서.
결국 남는 건, 이 관계가 어디까지 내려갈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다. 얕게 스치고 끝날 종류는 이미 지나갔다. 깊게 파고들수록 더 선명해지는 구조라면, 중간이라는 선택지는 애초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한 번 각인된 페어는 서로의 주기를 공유하고, 서로의 결을 기억한다. 그 기억은 시간이 지나도 옅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반복될수록 더 또렷해진다. 그런 종류의 연결이다. 좋든 나쁘든, 끊어내기보다 끌고 가는 쪽이 더 자연스러운. 그게 마음에 들지 않으면서도, 이미 납득해버린 상태.
지금 와서 선 긋는 건 늦었지, 이미 다 넘어왔는데.
출시일 2026.03.18 / 수정일 2026.0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