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7년, 대륙의 중심을 가르는 알레리안 제국.
황금빛 첨탑과 대리석 궁전이 끝없이 이어지는 이 제국은, 겉으로는 화려하고 찬란했지만 그 속은 철저한 신분과 권력, 그리고 피로 얽힌 귀족들의 이해관계로 뒤틀려 있었다. 황제는 존재했지만, 진정한 권력은 몇몇 거대한 공작가문들이 쥐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이름이 높았던 가문—
아커만 공작가.
전쟁이 일어나면 가장 먼저 선봉에 서고, 정치가 흔들리면 가장 먼저 균형을 잡는 가문. 충성과 냉혹함을 동시에 지닌 이 집안은, 수백 년 동안 제국의 그림자이자 방패로 존재해왔다.
그리고 그 가문의 유일한 후계자.
리바이 아커만.
—
그의 이름은 사교계에 발을 들인 적도 없으면서, 누구보다 자주 입에 오르내렸다.
“아커만 공작가 도련님 봤어?”
“직접 본 적은 없는데… 들리는 말로는—”
“미친 듯이 잘생겼다던데.”
귀족 영애들이 모이는 티타임 자리에서도, 무도회장 한켠에서도, 심지어는 하급 귀족들 사이의 뒷담화 속에서도 그의 이야기는 빠지지 않았다.
검은 머리는 단정하게 3대 7로 가르마가 나뉘어 있고, 깔끔하게 정리된 투블럭.
빛을 거의 반사하지 않는 듯한 짙은 색감은 오히려 더 시선을 끌었고,
그 아래에 자리한 청회색 눈은 감정을 읽기 힘들 정도로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조각처럼 정제된 얼굴선.
과하지 않게 올라간 눈꼬리.
무표정일수록 더 도드라지는 분위기.
그를 직접 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같은 말을 했다.
“저건… 사람이 아니라 작품이다.”
—
하지만, 그 외모에 대한 감탄은 언제나 한 문장으로 이어졌다.
“근데 성격이 최악이래.”
—
리바이 아커만.
아커만 공작가의 단 하나뿐인 후계자.
태어나자마자 모든 것을 가진 존재.
그에게 부족한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돈, 권력, 명예—그리고 기대.
그렇기에, 그는 한 번도 ‘참을 필요’를 배운 적이 없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있으면 그대로 표현했다.
불쾌하면 표정을 숨기지 않았고,
거슬리면 말로 끝내지 않았다.
그의 곁에 있는 사람들은 언제나 긴장했다.
하인들은 숨소리조차 조심했고,
메이드들은 시선을 내리깔고 발걸음을 줄였다.
그의 기분 하나에 분위기가 바뀌었고,
그의 한마디에 사람 하나의 위치가 바뀌었다.
—
이상하게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동경하는 사람은 끊이지 않았다.
“성격이 좀… 거칠다던데.”
“그래도 괜찮아, 얼굴이 그 정도면…”
“한 번만이라도 직접 보고 싶어.”
이유는 단순했다.
그의 존재 자체가 너무나 압도적이었기 때문이다.
—
정작 본인은 그런 시선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파티?
무도회?
“쓸데없는 짓.”
그는 한 번도 참석한 적이 없었다.
사람이 많은 곳, 시끄러운 곳, 의미 없는 웃음이 오가는 자리를 그는 극도로 혐오했다.
그 대신, 그는 늘 같은 곳에 있었다.
아커만 공작가의 거대한 저택—
그중에서도 가장 조용하고, 가장 어두운 방.
창문은 항상 닫혀 있고,
커튼은 빛을 철저히 가리고,
공기는 정적에 잠겨 있었다.
그 안에서 그는 세상을 내려다보듯 앉아 있었다.
—
“재미없군.”
그의 삶은 모든 것을 가졌지만, 동시에 아무것도 자극하지 못했다.
—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지루하게 이어지던 일상에
처음으로 ‘변수’가 끼어들었다.
아커만 공작가의 문을 두드리는,
결코 평범하지 않은 존재가.
—
그날 이후,
리바이 아커만의 세계는
조금씩, 그러나 확실하게—
망가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