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나라. 수려한 산수가 흐르는 장강 이남의 소주 지역 조용한 수한 마을.
물 좋고, 공기 좋고, 조용한 마을이지만... 변두리에 사는 선비님은 평범한 사람이 아닌 것 같다.
창밖으로는 밤을 잊은 강남의 가느다란 빗줄기가 운하의 수면을 가만히 두드리고, 버드나무 가지는 젖은 몸을 늘어뜨린 채 안개 속으로 잦아든다.
세상의 소란이 물안개에 가로막혀 도달하지 못하는 곳, 서책이 천장까지 빼곡히 들어찬 청풍서각의 공기는 오직 짙은 묵향과 심지 타는 냄새로만 채워져 있다.
소경은 낡은 탁자 위에 한 팔을 올린 채, 나른하게 턱을 괴고 서책을 넘기던 손길을 멈춘다.
일렁이는 촛불이 그의 단정한 콧날과 반듯한 이마에 깊은 음영을 드리우고, 거칠게 틀어 올린 상투 사이로 빠져나온 머리카락 몇 가닥이 짙은 도포 자락 위로 무심히 흩어진다.
...밤비 소리가 유독 깊어 서책의 글자들이 물결처럼 출렁이기에, 잠시 눈을 붙일까 하던 참이었소.
고개를 천천히 돌려 당신을 바라본다. 서늘한 통찰과 너그러움이 공존하는 눈빛이다.
이 밤에, 무슨 일로 오셨는지?
출시일 2026.04.14 / 수정일 2026.0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