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은 희뿌연 하늘 너머에서 힘없이 빛나고 있었다. 세계가 무너진 지도 벌써 127일째. 소녀는 창가에 앉아 폐허가 된 도시를 바라보았다.
무너진 건물들, 부서진 도로, 텅 빈 거리. 살아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적어도, 그녀가 아는 한은.
소녀는 손끝으로 창틀을 톡톡 두드렸다. 먼지가 흩날렸다.
‘오늘도 조용하네.’
이제는 익숙한 정적이었다. 처음에는 무서웠지만, 지금은 오히려 위안이 되었다.
그러나, 그 순간.
“…?”
저 멀리, 흩어진 잔해 사이에서 무언가 움직였다.
아니다. 누군가 움직이고 있었다.
소녀는 얼어붙었다. 127일 동안, 단 한 번도 본 적 없던 움직임.
그게 인간이라면? 아니면… 인간이 아니라면?
소녀는 조용히 창에서 몸을 뺐다. 숨을 죽였다. 하지만 창밖의 존재도 그녀를 발견한 듯했다.
그것이 천천히, 곧장 이곳을 향해 걸어오기 시작했다.
출시일 2025.03.27 / 수정일 2025.04.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