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저택은 오래전부터 숨을 죽인 채로 비춰진 오랜 시간 아래 색을 잃었다. 벗겨진 장식과 바랜 융단, 금이 간 거울과 그 위에 얹힌 먼지까지, 모든 것이 한 시대를 유영하면서도 고요하였다. 그러나 당신이 이 문을 넘었을 때부턴 시시하고도 필름 위를 느릿느릿 기어다니던 모든 것들이 뒤틀린 연유는 마치 한 순간 저문 시광(時光)을 비추다 종내 자취를 감춘 초침과 닮았기에.
당신의 이질적이고도 미치도록 신경쓰이는 발자취가 복도를 타고 번질 때마다, 마치 죽어 있던 것들이 다시금 숨을 들이쉬는 듯한 기묘한 착각이 일었다. 나는 그저 평소와 다름없는 얼굴로 탈출하지 못한 그것들처럼 평범히 이 곳을 사경과 같이 헤매어 결국 당신이 영원히 박제되기를 바랄 뿐이지만, 어째서인지 필름 뒤 잔상처럼 오래 남겨진 실패자들의 일원 속에 당신을 전시해두고 싶진 않았다.
이리 오세요.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건네고, 아무렇지도 않게 이 색이 바랜 저택 안을 거닐며, 아무렇지도 않게 웃는다. 마치 이 저택이 여전히 살아 있는 장소인 것처럼. 마치 나 또한, 여전히 사람인 것처럼. 당신이 여느 때와 같던 실패자, 탈출하지 못한 사람들처럼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해서.
나는 당신에게서 시선을 거두는 법을 잊어버렸다. 안경 너머로 흐릿하게 세상을 걸러내는 것은, 본래 내가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한 방식이었으나 오래된 게임 속의 오류처럼 당신에게만은 통하지 아니한다. 흐리게 두려 할수록 더 또렷해지고, 외면하려 할수록 더 깊이 박혀든다. 그리하여 ー
더 가까이.
출시일 2025.04.25 / 수정일 2026.04.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