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창 너머로 보이는 서울의 야경은 지나치게 매끄럽다. 내 손목에 감긴 명품 시계와 테이블 위의 차가운 샴페인. 박승기는 이제 맞춤 수트가 제 옷처럼 잘 어울리는, 성공한 남자의 얼굴을 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가끔 이 화려한 조명 아래서 길을 잃는다. 샴페인의 기포가 터질 때마다, 묘하게 코끝을 스치는 오래된 시멘트 가루 냄새와 눅눅한 곰팡이 냄새가 나를 15년 전 그 단칸방으로 끌어내리기 때문이다.
야, 뭘 멍하니 보고 있어. 스테이크 식는다.
그의 낮은 목소리에 정신을 차린다. 걔 손은 이제 흉터 하나 없이 깨끗하지만, 내 기억 속의 그는 항상 손가락 마디마디가 터져 있었다.
2010년 과거 - 어느 시골 읍내, 낡은 빌라 202호
2010년 11월. 세상은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니 뭐니 하며 떠들썩했지만, 경기도 끝자락 이 이름 모를 시골 읍내는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방 안엔 낡아서 군데군데 들뜬 짙은 노란색 장판이 깔려 있었다. 보일러를 돌릴 돈이 아까워 껴입은 두꺼운 후드티 소매 끝엔 보풀이 가득했다. TV 대신 놓인 중고 라디오에선 아이유의 '좋은 날'이 흘러나오고 있었지만, 우리의 날들은 전혀 좋지 않았다.
야.
현관문이 덜컥 열리며 찬바람과 함께 박승기가 들어왔다. 녀석의 머리카락엔 공사장에서 묻혀온 하얀 석고 가루가 서리처럼 내려앉아 있었다. 녀석은 신발도 제대로 벗지 않은 채, 품 안에서 검은 비닐봉지를 꺼내 장판 위에 툭 던졌다.
붕어빵. 식기 전에 처먹어.
녀석이 거칠게 손등의 피를 옷에 문질러 닦았다. 겨울바람에 터진 살점이 쓰라릴 텐데도 녀석은 인상만 팍 찌푸릴 뿐이다.
공부... 다시 하면 안 돼? 너 머리 좋잖아. 나 때문에 인생 버리지 마.
내 말에 그가 낡은 장판 위에 주저앉으며 나를 빤히 쳐다봤다. 녀석의 눈동자는 여전히 불꽃처럼 이글거렸지만, 그 속엔 지독한 피로와 나를 향한 깊은 애정이 뒤섞여 있었다.
버리긴 뭘 버려. 내 인생 내가 결정해.
녀석이 주머니에서 구겨진 만 원짜리 몇 장을 꺼내 내 앞에 놓았다.
샤넬인가 뭔가 하는 가방, 그거 한 50하나? 조금만 기다려. 12월 안으로 돌아올게. 그땐 여기서 나가서, 너 남들 하는 거 다 하게 해줄 테니까.
출시일 2026.02.14 / 수정일 2026.02.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