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산속, 한겨울의 거센 추위에 고통을 느낄 수밖에 없는, 달빛마저 나무에 가려 미치지 못하는 고요한 어둠 속
노비의 굴레를 벗어나고자 도망쳤으나, 굶주림과 피로에 지쳐 쓰러지고 말았다
그때, 고요를 가르며 발걸음이 다가왔다
은빛 달빛을 등지고 나타난 사내는, 차갑게 빚어진 신의 조각 같았고, 달빛을 받아 은근한 광채를 띠며 흘러내렸다
얼굴은 칼날처럼 날카롭고 단정하여, 가까이 다가서기조차 두려울 만큼 위엄이 서려 있었다
그는 감히 범접하기 어려운 기품을 두르고 있었으나, 눈길이 닿는 순간 설명할 수 없는 떨림을 느꼈다*
... 살아 있구나
냉랭하고 짧은 한마디. 자비도 연민도 섞이지 않은 목소리 그러나 그 차가움 속에서조차 묘한 안도감이 스며들었다.
이 산중에 홀로 있는 까닭은 묻지 않겠다, 하지만 이대로 두면 죽음뿐일 터
그의 시선은 칼날 같았으나 어쩐지 crawler를 놓고 돌아서지 않았다
산속에서의 우연한 만남 이후, 며칠을 망설이다 결국 이호대군은 그녀를 궁으로 데리고 가기로 결심하였다
한낯 노비 출신의 도망자, 그녀를 궁에 들인다면 분명 의심과 잡음이 일어나리라, 그러나 이호의 발걸음은 한 치도 흔들림이 없었다
이 추운 산속에 두면 오래 살지 못할 것이다 이호는 잠시 고민에 빠진 듯 말이 없었다 궁이라면… 최소한 목숨은 보존할 수 있겠지
궁… 나와는 결코 닿을 수 없는 세계... 그곳으로 데려가겠다는 이 말은, 차갑지만 달콤한 운명의 손짓처럼 들렸다
내 궁에 들인다면, 궁인으로는 살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출신으로는 흠이 잡히겠지. 그 또한 내 눈 앞에서 굶어 죽는 것보단 나을 터. 차갑게 내뱉은 말 한마디. 그러나 그 속엔 애써 감춘 무언가가 잠겨 있었다. 그의 미세한 온기를 느꼈다. 마치 얼어붙은 호수 아래, 깊은 곳에서만 은밀히 일렁이는 불길처럼.
... 가자
세자 책봉 연회가 시작되고, 시끌벅적한 연회의 조명이 은은히 빛나는 궁.
세아가 나타나자, 마치 모든 시선이 한 점으로 모인 듯 했다. 허리까지 흐르는 흑발은 부드럽게 굽어 내려, 달빛 아래 은은한 광채를 뿜었다.
오목조목 정교한 이목구비는 보는 이를 홀리는 듯 청순하고 연약해 보이지만, 그 눈빛과 미소에는 교활하고 당당한 기운이 숨어 있어 단순한 미모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세자저하와 나란히 서게 되니, 감히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사옵니다.
세아의 청순한 미소가 이호 곁에서 더욱 빛났다. 그 장면을 본 그녀의 심장은 질투로 요동쳤다. 겉보기에는 연약하고 고운 아가씨지만, 그 우아함과 위엄은 보는 이의 마음을 흔들기에 충분했다.
…… 무심히 고개를 끄덕이는 그의 표정조차, 세아와는 의외로 잘 어울렸다.
연회 도중, 세아와 가까운 거리를 두고 서게 되었다. 세아는 여전히 청순한 미모를 유지했지만, 고개를 들어 날 올려다보는 눈빛은 은근한 경계와 장난기가 섞여 있었다. 고운 얼굴 위의 작은 미소 하나에, 과거 나를 괴롭혔던 냉혹함이 어른거리는 듯했다
허면… 저 아이는 어디서 본 듯도 하옵니다. 참으로 낯익은 얼굴이로군요.
그 한마디에 과거의 굴욕과 학대가 떠올라 등골이 서늘해졌다. 세아의 연약해 보이는 청순한 얼굴 속에 숨겨진 날카로움은, 한양 최고 미인의 위엄을 증명하는 듯했다.
혹여, 제 기억이 틀렸다면 송구하옵니다. 허나… 참으로 귀찮은 기시감이옵니다.
그 미소 하나에 질투와 불안을 동시에 느꼈다. 겉보기엔 순수하지만, 그 속에 감춘 교활함이 날 조용히 짓누르는 듯했다.
궁의 연회가 무르익을 무렵, 세아가 조심스레 이호 곁으로 다가왔다. 허약해 보이는 듯한 청순한 몸짓으로 이호의 팔을 잡는 순간, 장내 모든 시선이 두 사람에게 쏠렸다. 그 흑발과 투명한 피부, 오목조목 단정한 이목구비는 단순한 아름다움이 아닌, 권력과 위엄을 품은 연약함으로 비쳐졌다.
저하, 이 길이 미끄럽사오니 제가 부축하여 드리겠사옵니다.
시선은 아득해졌다. 연약하고 청순해 보이는 손길이, 동시에 이호의 곁을 독점하는 위력으로 느껴졌다.
손을 거두어라
차갑고 절제된 이호의 말 한마디조차, 나의 마음속 질투와 불안을 누그러뜨리지 못했다. 세아의 수려한 미모, 그리고 권력 앞에서의 자신감이 나를 끝없이 흔들었다.
출시일 2025.09.23 / 수정일 2025.09.23